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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 문화개관
■조선통신사 이전의 통신사
1. 고려때의 통신사와 조선전기의 통신사절

2. 조선전기의 사절과 조선통신사와의 차이점
■조선왕조 후반기의 통신사 - 李進熙
1.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나라

2. 국교의 회복
3. 동래부사(東萊府使)와 쓰시마번주(對馬藩主)의 역할
4. 통신사 파견의 절차
5. 해로(海路)와 육로(陸路)를 따라
6. 엄숙한 국서(國書) 전달 의식
7. 활발한 학술/문화 교류
8. 선린(善隣) 관계의 파탄


백제와 일본의 문화개관
■渡來人을 찾아서
이주와 활동의 4단계

■다시 쓰는 일본 고대사
■조선통신사 연표


사전답사기
교통비 내역
조선통신사 문화개관
■조선왕조 후반기의 통신사 - 李進熙
1.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나라
2. 국교의 회복
3. 동래부사(東萊府使)와 쓰시마번주(對馬藩主)의 역할
4. 통신사 파견의 절차
5. 해로(海路)와 육로(陸路)를 따라
6. 엄숙한 국서(國書) 전달 의식
7. 활발한 학술/문화 교류
8. 선린(善隣) 관계의 파탄

7. 활발한 학술/문화 교류


국서(國書) 전달이 끝나면 약 2주일 뒤에 도쿠가와 장군(德川將軍)의 서한(國書)과 국왕에게 보내는 예물(禮物), 삼사(三使)에게 주는 선물(膳物)이 전달되는데 그 사이에 양국의 학자?문화인들 간의 교류가 펼쳐진다. 삼사(三使)는 막부(幕府)의 대학인 창평횡(昌平 )의 대학두(大學頭--학장)와 만나고 제술관(製述官)과 서기(3명)들은 각지에서 모여든 유학자?문인들과 교환(交歡)한다. 양의(良醫) 및 의원(醫員)들은 일본의 의원(醫員)과, 화원(畵員)은 화가들과 만난다. 그들의 교류에 대해 나카무라 에이코(中村榮孝)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사절단이 입국하면 일본의 문화인들은 앞을 다투어 같은 문자(文字--漢文)를 사용하는 이방인에게 면회(面會)를 요청하여 한시(漢詩)의 창수(唱酬)로 즐거움을 나누고 서화(書畵)의 휘호를 청하였다. 또는, 필담(筆談)에 의해 중국과 조선의 정정(政情)을 살피고 역사와 풍속을 묻고 경사(經史) 등 학문의 여러 분야에 대해 문답을 나누었다.『朝鮮』

특히, 제술관(製述官)과 서기(書記)는 쉴 사이 없이 방문객들과 만나야 했으며, 1719년의 제술관(製述官) 신유한(申維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관(使館)에 연일 심상(尋常)한 시인들의 방문이 잇달아, 시를 부르고 화답하기와 필담(筆談)으로 쉴 사이가 없어 고통을 겪었다. ……시문집(詩文集)의 서문이니 화제(畵題)니, 화상(畵像)의 찬(贊)이니 영물시(詠物詩)의 유(類)를 모두 내가 손수 쓰고 도장 찍은 것을 받아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골몰하여 겨를이 없게 하였다. 『海游錄』

이와 같이 일본의 학자?문화인들은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나라에 대해 친근감을 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 유학자들은 퇴계학(退溪學)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기호(嗜好)와 자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높았다. 1711년의 제술관 이동곽(李東郭) 같은 고명한 유학자도 당황할 정도로 퇴계학(退溪學)에 대한 연구 수준이 높았다. 퇴계학(退溪學)을 일본에 전한 사람은 임진왜란 때 연행당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쇄환되어 간양록을 집필하여 당시 일본에 전후 사정을 밝혀주었고 북방뿐아니라 남방에 방비에도 충실할 것을 상소함.
강항(姜沆)인데 그의 제자인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가 일본 주자학(朱子學)의 개조(開祖)이다. 그는 우리 나라의 심의도복(深衣道服)을 입고 「마음 속으로부터 당나라의 제도와 조선의 예절을 존경하고 의복?음식에 이르기까지 당나라와 조선을 본받으려 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제자인 하야시 라잔(林羅山)은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문교 정책을 담당하는 대학두(大學頭)의 지위에 올라 제6차까지의 통신사의 영접과 외교 문제 작성에 참여했다. 그는 통신사를 맞이할 때 「도(道)에는 내외(內外)가 없고 이(理)에는 원근(遠近)이 없다」는 자세를 견지했으며, 그의 직계 자손이 대대로 대학두(大學頭)에 취임했다.
왕복 6개월이라는 긴 여행이었지만 통신사 일행은 양국의 신뢰 관계를 두텁게 하는 대임을 수행하고 선진 문화, 학술의 전달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일행이 귀국한 후 다음과 같은 서적이 출판되었다. 『상한성사답향(桑韓星 答響)』, 『상한성사여향(桑韓星 餘響)』, 『남도고취(藍島鼓吹)』, 『양관창화집(兩關唱和集)』, 『상한창수집(桑韓唱酬集)』, 『화한창화(和韓唱和)』, 『상한창화훈지집(桑韓唱和塤 集)』, 『한객필어(韓客筆語)』, 『객관최찬집(客館 粲集)』, 『봉도유주(蓬島遺珠)』, 『기해계림신주(己亥鷄林新珠)』. 그밖에도 다수의 미간본(未刊本)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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