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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바르비죵(BARBIZON)
오천년 前에로의 回歸 (거석문화의 原點! 스톤헨지)
 
 
 
처음 그대로의 모습 , 바르비죵(BARBIZON)을 만나다. ""

1. 여행목적 및 참가자


 

1)참가자 : 정용필 기장님. 임병희 부기장님,김재만 부기장님, 차문성 사무장님, 오주은

님, 최윤정님, 권지현님, 최은희님, 이정하님, 여명화님 (이상 10명) - 참가자격은 자전거를 잘 타야함
2)목적: 일명 나폴레옹 성이란 퐁텐블루의 감상과 밀레의 정신적 고향인 바르비죵을 찾아가기 위한 막연한 생각으로 여행일지를 넘기다.

2. 일정: 1) 2002년 5월 15일 오전 10시 호텔 출발


2) 파리 GARE DE LYON역에서 SNCF 이용 (지상층)
티켓은 지상층 우측코너에 퐁텐블루행 약식 카운터에서 발권함
티켓구입시 왕복기차비와 입장료를 함께 구입하는 것이 시간절약

 


3) 출발 12시 51분 SNCF로 출발 (좀빠른 시간이 유리함)
-LYON
-MELON
-BOIS LE ROI
-FONTAINBLEAU-AVON역 4개역 통과후 도착 총 40분 소요
4) 퐁텐블루 아봉역에서 퐁텐블루로 가는 버스를 탐(역앞에서)
5) 퐁텐블루 샤토(성)에 도착
6) 자전거 임대 (위치는 안내소밑 골목길로 200미터 정도가서 묻거나 분수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자전거 빌리는 곳을 물으면 됨)-자전거 임대시 ID맡김
7)자전거로 큰길로 나가 INFO COUNTER로가 직진해 한참 가면
로타리(5거리)가 나옴. 여기 로타리에서 숲이 펼쳐진 길로 100M 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숲길이 나옴.
이 길이 FONTAINBLEAU와 BARBIZON을 연결하는 길임. 가파른 이길을 약 8KM
정도 달려야 함. 이 길이 FONTAINBLEAU와 BARBIZON을 연결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닥을 보면 됨. ""FB""라는 인쇄가 길바닥에 적혀 있음
8)퐁텐블루에서의 무료함이 바르비죵을 가는 도중 즐거움으로 이어졌고 밀레의 바르 비죵을 보는 순간 모두는 감동에 빠져버렸다.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바르
비죵이기에...(아래 답사기 참조>


"" 처음 그대로의 모습 , 바르비죵(BARBIZON)을 만나다. ""

전날 바르비죵을 다녀온 피로가 덜 풀렸을까.... 가슴 한곳이 약간 저미는 것을 보면 피로가 아니라 감동의 여운이 남아서 일게다. 항상 여행을 다니는 나로서도 이만한 재미와 느낌을 주는 답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연히 급조된 10명의 멤버들이 가진 조화로움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퐁텐블루로 향하다

 

5월 21일 아침 10시 그레이 버스를 탔다. 김재만 부기장님과와 나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밀레의 ""만종""의 굼금증을 덜기 위해 퐁텐블루로 가기로 하였고 여기에 2명이 합류하여 좀은 메마른 팀웍을 다지면서 그레이(피라밋역)에 도착했다. 가면서 내내 나폴레옹이 살은 퐁텐블루성의
위대함과 밀레가 그린 만종의 종교적 감흥에 열을 올리며 얘기한다....

『밀레의 그림은 당시 그림 소재에 있어 일종의
혁명적이었지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농부와 시골풍경, 감자, 교회등 당시는 사용하지 않던 소재들을 그림속에 사용했습니다., 이때 밀레와 함께 그린 일군의 화가와 이들의 그림을 모방한 사람들은 파리교외의 시골한촌 바르비죵에서 활동했기에 바르비죵파라 하지요. 즉 풍경화에서 인물화를 첨가한 사람들입니다. 이작줍는 사람들, 만종등이 그렇지요. 그 그림의 풍경이 바로 풍텐블루에서 10km 떨어진 바르비죵에 있읍니다』

6명의 미녀들이 위의 소개에 현혹되어 ""바르비죵행""에 합류하기를 원해 부랴부랴 급조한팀, 일명 ""바르비죵팀""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퐁텐블루에 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10년전의 일이고 퐁텐블루에서 바르비죵에는 가본적이 없었기에 불안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었는데...
리용역에 도착하니 11시40분 티켓을 끊기 위해 큰 카운터에 갔더니 옆의 작은 약식카운터로 가라고 해 퐁텐블루행 왕복티켓과 입장료를 내었다. 출발은 12시 51분... 시간은 여유로와 역에서 식사와 커피한잔을 하는 사이 어느새 출발시간은 가까워져

푸른분수라는 이름의 퐁텐블루에서 ,,,
10명이 퐁텐블루행 기차를 탄지 불과 40분만에 ""퐁텐블루 아봉""역에 도착.

 


건너편 버스를 타고 10분 뒤 샤토에 도착해 퐁텐블루 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확실히 베르사이유에 비해 그 화려함은 뒤떨어진다,
그러나 베르사이유가 프랑스 전제정치의 집적력을 나타낸 화려함의 극치에 이른 궁전이라면 퐁텐블루는 그 이름처럼 그냥 ""푸른분수""로 남아 있는 그러한 흔히 볼수 있는 성에 불과하다,
한국에 있는 종묘가 여러 세대에 걸쳐 준공한 건물인 것처럼 퐁텐블루도 프랑수와 1세부터 7대에 걸쳐 증축하여 완공한 궁전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궁전의 모습이 아닌 단순한 사냥을 위한 건물로 지어졌다 한다,. 지금도 성입구의 계단형태가 말발굽 모양인것과 동상등이 사냥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전체의 구성은 궁전, JARDIN(정원) , 운하로 크게 3개로 구성이 되어 있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정원과 건물은 항상 세트이다. 베르사이유는 건물보다 정원이 더 유명한 곳이고 퐁텐블루 역시 건물만큼 정원이 유명하다. 베르사이유는 세느강의 물을 인공으로 끌어 들였다지만 , 이곳의 운하는 크지만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다. 인공적인 숲과 자연적인 숲의 차이점에서 오는 편안함이 이곳 퐁텐블루에는 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재구성하는 근대 프랑스인의 부유함과 치밀함에 놀라기 보다는 오히려 구절진 언덕과 갖은 나무로 꾸며진 영국식정원이 맘에 드는
것은 우리가 한국사람이란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일 것이다.

 

베르사이유처럼 궁전내부가 개방되어 있지 않는 비공개 궁전이기에 이곳은 언제와도 한적하다, 홍예로 된 궁전 뒤를 들어가 본다. 커다란 운하가 양켠에 난간을 두고 크리스마스 츄리처럼 깔끔히 다듬어 진 나무사이에 큼지막한 호수가 놓여 있다. 프랑스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건물주위에 높다란 나무가 길 양옆으로 놓여 있는데 그곳으로 마차가 다닌다. 뒤로 돌아가보니 전혀 다른 건물의 재료가 사용된 흔적이 벽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랜 세월을 두고 증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전통건물은 증축시 같은 목조로 잇기에 목조결구를 알지 못하면 구분하기 힘들지만 서양건물은 대부분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에 덧이은 부분은 벽돌을 사용한 조적식이다. 붉은 것이 네덜란드 풍인 느낌이 든다.

밀레의 만종을 찾아 바르비죵을 가다 밀레의 그림을 미술사가 곰브리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농부를 그려넣은 풍경화의 진솔한 모습과 햇살비친 들판은 계산된 리듬이 있다. 전체구성에 안정감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이 장면이 얼마나 엄숙한것임을 느끼게 해준다.』(예경:
서양미술사)>

 

그렇다. 밀레의 그림은 당시 기도하는 농부와 해질 녁 , 그리고 낙조가 비친 들판과 교회종소리가 한데 어울린 그림이다. 마치 보고 있는 사람을 종교인으로 바꾸는 신기한 힘이 있다.
최초 밀레가 밑그림을 그렸을 때는 농부아래에 있는 바구니에 감자가 아니라 죽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한다. 죽은 아이를 위한 부모들의 기도였지만 친구의 충고로 감자바구니로 바꾸었다는데... 그래서 그 숭고함이 더 절실한 것인가,이제 퐁텐블루성 투어가 끝나고 바르비죵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한시간반을 헤멨던가. 안내소도 둘렀지만 자전거 대여점이 없다. 할 수없이 처음 들렀던 자전거 대여점에 갔더니 자전거를 빌려 준다는 것이 아닌가. 말이 안통해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휴일인데 두 번이나 찾아온 정성이 갸륵해 자전거를 빌려 준 듯 싶다.

시간은 벌써 오후3시라 자전거를 빌릴수 있는 시간은 불과 4시간 30분밖에 없다. 대충 물어 보니

 

바르비죵까지는 10KM ... 혹 언덕길은 아닌가. 그렇다면 시간은 더욱 많이 들것이 뻔한일... 택시를 타고 간다면 ""진정한 바르비죵""의 느낌은 가버리고 비싼 택시비만 지불하는 꼴....
바르비죵까지는 10KM 라는데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진정한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터, 만종과 이삭줖기등의 그림같은 풍경을 스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아뿔사 2명이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했다. 시간에 쫒겨 어쩔수 없이 8명이 다녀올동안 2명은 퐁텐블루 숲에서 자전거를 연습하라고 했는데. 쥐가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에게 덤빈다고 했던가... 잠시후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따라 오는 것은 아닐끼....(이들에게는 막다른 길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원더우먼들...

자전거는 일렬로 서서 100M에 걸쳐 뻗어있고 앞과 뒤는 남자들이 앞장서고 한명은 연락책을 담당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나선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맥가이버들이다.

 

안내소를 지나 위를 올라가니 로타리가 나왔다. (여기까지 무척 헤멨다) 마침 자전거 선수가 있어 물어 보니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감사에 또 감사를... 로타리를 돌아 100M를 지났을까... 자기마한 숲길이 나왔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파른 언덕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이 숲길에서 바르비종까지 8KM라고 한다. 처음에는 막 쓰러질 것 같던 여인들이 앞장서기 시작한다. 여인천하
신드롬이다.

얼마나 올랐을까... 오르면 내려가는 길이 반드시 있는법... 이 길을 수없이 반복하다... 우리는 이 길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길이름은 ""FB"" 도시와 도시를 연결한 숲길,... 우리나라에는 이같은 길이 없다, 이 길을 번잡하리라고 생각한 우리들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야말로
가지않은 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됨을 느꼈다. 누가 얘기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이었

 

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곳이 gorges라는 곳이다. 마치 고인돌 처럼 수많은 돌이 중첩되어 숲길 양옆으로 놓여 있다. 정확히 어떤곳인지는 몰라도 놀라운 유적지임이 틀림이 없다.
아무튼 자전거 여행에 이 gorges가 더욱 멋을 더해 준다. 마지막 숲길에서 우리의 희망인 안내하는 사람이 작별을 청한다.
이름자도 묻지 않은 것은 예의가 아니었는데... 이 글을 통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를 깊은 감동으로 인도한 사람이다.

 

앤티크한 바르비죵마을
어느새 시간은 5시가 되어 바르비죵이 1km남았다는 팻말이 나왔다. 마지막 대열을 정리하고 우리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바르비죵마을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바르비죵마을 ... 밀레가 산것과는 달리 틀림없이 변해 있을거라고 믿은 우리의 생각은 잘못이었다, 바르비죵마을은 한폭의 그림이었고 그 내부는 앤티크 자체였다. 좁다란 길은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시골풍경을 어집럽히지는 않았다. 전봇대는 덩굴로 덮여있고 튀지 않은 그림가게들, 길 사이의 좁은 골목길,
오래된 교회와 낡은 찻집, 그리고 밀레의 그림을 전시한 미술관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오래된 교회옆에 밀레의 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밀레의 그림을 사기 위해 들어간 집이 바로 ""밀레의 생가""였다. 더욱이 우리가 커피를 한잔하려고 했던곳이 (레스토랑) 영국여왕이 다녀간 곳이라니 우리의 심미안이 영국여왕에 버금간다고 해야할까.

마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밀레의 그림속 풍경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밀레의 ""만종""에 빠져 들어 갔다. 그곳은 막연한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어렵사리 퐁

 

텐블루에 와서 바르비죵까지 이른길이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밀레와 만종이란 그림의 배경만이 아니라 가슴깊은 곳의 추억과 고향이란 단어를 우리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그 실망스러음은 갑자기 환희로 바뀌었다. 10명은 모두 어린애로 바뀌었다. 아마 고향이란 단어를 이같이 실감해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밀레의 만종이 종교적인 의미로 느껴졌다. 비록 깊은 종소리(만종)은 없었지만 이곳에 오면 누구나가 만종의 주인공처럼 승화될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린 어린아이처럼 사진을 찍었다. 만종의 안내판에서도 ,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에서도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김재만씨와 임병희씨가 바르비죵 입구의 숲까지 먹거리를 사왔다.
이어 저녁에 맥주한잔으로 바르비죵의 추억을 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대한 화가는 위대한 자연에서
기차안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았다. 아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만종의 주인공이 되고자 할 것이다. 이름모를 농부인 부부가 낫과 곡괭이를 내려놓고 해가 어스럼 질녁에 멀리
교회종소리가 울릴 때 쓰고있던 모자를 내리고 가슴에 손을 올려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았을까... 그러나 만종의 그림속처럼 바르비죵에는 아스라한 들판뒤에 교회는
없었다. 화가의 상상력이였던가. 그러나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우리 모두는 들판의 교회를 가슴속에 그려 넣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밀레가 그려 넣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 바르비죵”의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다.

小窓 차문성 씀

다음날 저는 오르세 미술관에 밀레를 찾아 갔습니다.
밀레의 그림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이 오르세미술관이기 때문입니다.
밀레의 그림에서 밀레가 바르비죵과 바르비죵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파리에 가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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