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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로란?


3.역원의 정의

1)驛 制

역은 오래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신라 소지마립간 시대이다. 동 책에 고구려도 국내성에서 평양까지 17역을 두었다 하니 역은 길을 연결시키는 쉼터와 중심점의 역할을 해왔다.
고려 성종이후 역수가 증가해 전국에 525개의 역이 설치 되었다. 고려말의 혼란이 평정된 조선 태조때는 곳곳에 신설된 역이 생겼다. 평안도는 사신왕래를 위해 역을 두었고 삼남지방의 세곡을 거둬들이기 위해 역을 만들었다.

역이란 공문서의 전달, 관물의 수송, 외국사신의 왕래와 공무여행자들에 대한 편의제공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역은 조선왕조 성립 후 부곡이 역으로 변한 경우도 있었지만 30리마다 1개의 역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평안도 지역의 역은 관이란 이름으로도 쓰이는 데 이는 정기적으로 사신의 왕래를 위한 격을 높인 말이다.
거의 대부분의 역이 삼남에 치우쳐 있지만 대로는 거의 없고 대개가 소로로 형성되어 있다. 황해도와 평안도는 다수가 중로이고 경기를 중심으로 대로도 12개 역이 있다.
중종대에 전국의 역은 京驛 2역과 40도 540개 역으로 정비되었는데 그 후 폐지,신설등의 변화가 일부 있었지만 크게 변화는 없었다.

역은 30리마다 1역을 설치해 중앙과 지방을 연결했는데 각도의 리수가 맞지 않아 토석과 수목을 심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30리마다 역을 설치하지는 못했지만 점차 맞춰져 갔다.
역로는 교통의 역할, 사신의 왕래, 물산의 이동 등 오늘날의 국도와 같은 역할이다.

수 개 혹은 수십 개의 역을 묶어 1도라 불렀는데 관장하는 관리를 찰방(종6품)과 역승(종9품)이라 한다. 세조 3년에는 경기 이남의 지역을 개편해 찰방도로 하여 역승을 철폐하고 정역찰방을 설치했다. 중종 때 김안로는 역승, 도승등의 혁파를 주장해 역승이 완전 혁파되었는데 중종 30년 이후는 역승이 모두 찰방으로 승격되어 기록되어 있다.
찰방은 역도의 여러 역을 맡은 까닭에 각역의 세세한 행정사무는 주로 역장 이하 역리에게 맡겨져 있었고 찰방은 각도를 감독 지휘하였다.

역마의 설치는 사신과 관원의 왕래에 편의를 제공하고 공문서의 전달을 위한 것이다. 역마는 대개 상등, 중등, 하등의 3등급으로 나누어 졌고 관리의 관품에 따라 발마한 마필의 수는 아래와 같다.

관원 상등마 중등마 하등마 태마(짐부리는 말) 합계
대군,의정부 1필   3 3 7
정2품이상 1   3 2 6
3품당상 1   2 1 4
6품이상   1 1 1 3
9품이상   1   1 2
통신사 1     2 3

이러한 역제는 고종 32년 우체사의 설치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2)院 制
역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지만 원은 공용여행자를 위한 숙박소이다. 고려 때는 사찰에서 원을 운영하였지만 조선조에는 이를 정비하여 원전을 지급해 운영하게 하였다. 원은 세조대에 1220개가 있었지만 공용여행자의 이용이란 한계로 점차 폐지되었다.

3)渡 津
진 과 도는 강의 폭에 따라 달리 불린 것으로 본다. 도에는 도승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진에는 도승이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가 진보다 큰 개념이다. 도는 한성을 중심으로 7개소인데 비해 진은 상당히 많이 있다. 예성강의 벽란도는 한성 바깥의 유일한 도인데 이는 당시 유일의 국제항구 역할을 했기에 경기우도수군판관이 도승을 겸했다.
도승은 후에 별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4)烽燧制
밤에 드는 횃불(봉:烽)과 낮에 피워 올리는 연기(수:燧)를 합친 말이다. 봉수는 변경의 상황을 중앙에 알리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봉수제도는 남산(목멱산)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수십 리마다 요지의 산정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평시에는 횃불을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경계 가까이에 있으면 셋, 경계를 침범하면 넷, 접전하게 되면 다섯을 든다. 바람이나 안개로 인해 봉수가 어려울 때는 봉수군이 달려서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봉수의 주요간선을 직봉이라하고 한성의 목멱산을 중심으로 경흥, 동래, 강계, 의주, 순천을 연결하는 5개 간선을 말한다 .그 외의 지역은 보조의 역할을 한다하여 간봉이라 칭했다.

4)파발제
파발제는 임진란 당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봉수제의 보완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으

며 선조 30년 중국의 파발제를 모방해 군사적 목적으로 변경에 관한 문서를 신속히 수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파발제는 보발과 기발로 나눠지는 데 서로, 북로, 남로로 불리는 세 간선로가 있다. 기발이란 파발마를 각 참마다 바꾸어 타고 목적지까지 공문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25리마다 한참을 두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20리마다 30리마다 한 참이 있다.
기발이 설치된 곳에는 발장이 1인, 색리가 1인, 군정이 5명, 말이 5필씩 배치되어 있었다. 보발이란 발군이 걸어서 공문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30리마다 한참을 설치하는 것이지만 때로 40, 50리마다 한 참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참이란 역이나 원과는 달리 숙식을 제공하지 않으며 단지 공문서 전달을 위한 말이나 발군을 제공하는 곳이다.
서로의 경우 한성-의주로와 같고 북로는 한성-서수라로와 같다. 남로는 이천을 경유 충주에 이르며 충주에서 동래까지는 한성-부산로와 같다. 西로는 기발인데 반해 남로와 북로는 보발이다. 점차 후기에 이르러 간로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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