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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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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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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화요일
오늘의 행로 호오류우지(法隆寺) 칸사이공항

호류지(法隆寺)

7세기 초엽에 건설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절이다. 금당 목조5층탑 중문 회랑이 7세기 건물이며 다른 건물들은 8세기와 13세기에 건설된 것이 많다. 또 7세기의 불상들이 7개 남아 있다. 가람은 동쪽에 탑, 서쪽에 금당을 배치한 형식이지만, 그 밑에 탑과 금당을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한 7세기 초엽 창건당시의 가람이 존재한 것이 발굴조사로 밝혀졌다. 그 가람을 와카쿠사(若草)가람이라고 부르는데 공개되어 있지 않다. 사이인(西院)가람과 도인(東院)가람으로 구성되는데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은 西院가람이다. 法隆寺 근처에는 몇군데 아스카시대(7세기)에 세워진 절터와 후지노키 (藤ノ木)고분 등이 있다.
1949년에 화재로 인해 금당 내부에 그려졌던 벽화가 파손되었는데 그 사건이 일본에서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601년 : 동원(東院)가람 밑에서 발굴된 이카루가노미야(斑鳩宮)가 건설되었음.
605-605년쯤 : 若草가람이 창건되었음.
622년 : 이카루가노미야(斑鳩宮)에서 쇼토쿠(聖德)태자가 죽었음.
643년 : 蘇我入鹿이 聖德태자의 아들인 야마시로노오에노오(山背大兄王)를 斑鳩宮에서 암살했음.
643년 또는 670년쯤 : 창건 가람인 若草가람이 소실되었음.
7세기 후반 또는 8세기 초엽 : 현재의 서원(西院)가람이 재건되었음. 현재의 금당은 적어도 690년 쯤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학설이 유력함.
738년쯤 : 山背大兄王 암살사건 이후 황폐된 斑鳩宮터에 동원(東院)가람이 창건되었음.

■法隆寺 중문
7세기 건물이다. 양측에 서있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은 8세기 나라(奈良)시대 소상(塑像)이다.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 독특한 공포 양식과 난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문 중앙에 기둥이 있는 것은 드물다.

■法隆寺 회랑
7세기 건물이다. 창건 당시에는 강당이 회랑 밖에 있었다.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과 살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회랑은 중문?금당?오층탑에 공통되는 구름형태의 공포가 아닌 간단한 구조이지만, 주두굽(皿斗)과 주두(大斗)를 이용하는 등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법륭사금당 정면, 측면도

 

■法隆寺 금당
7세기에 건설되고 오층탑보다 좀 오래된 건물이다. 기둥 위에 주두굽(皿斗)과 주두(大斗)를 두고 그 위에 구름형태인 살미(雲形木)와 구름 형태인 소로(雲斗)를 짜고 깊숙히 덮힌 처마를 받친 건축 기법을 잘 볼 수 있다. 또 卍자형 장식물과 人자형 받침을 가진 난간, 그리고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 등 전형적인 아스카시대 건축물이다. 일층 처마 밑에 한층 낮게 덧댄 차양 부분은 8세기 나라시대의 것이다. 이층의 용 모양 기둥은 17세기 말에 처마를 보강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금당 안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 초기 양식의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카마쯔고분(高松塚) 석실 벽화를 그린 화공(畵工)집단이 그린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벽화는 1949년에 소실되고 재현 벽화가 끼워져 있다.

■法隆寺 금당 석가삼존상

백제인 지리불사가 만든 석가삼존상


중앙에 있는 불상이다.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621-622년에 쇼오토쿠(聖德)태자와 그 아내가 잇달아 죽었는데, 623년에 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태자와 등신대 크기로 구라쯔쿠리노토리(鞍作鳥?鞍作止利)에게 만들게 했다는 글이다. 그는 아스카데라(飛鳥寺) 석가여래상을 만든 사람이다. 백제계 도래 씨족인 아야(漢)씨족 출신이며 5세기 전반기에 백제에서 건너온 시바타또(司馬達等)의 손자다.
불상을 둘러싼 대좌?천개 등의 장식물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大智度論」(대지도륜)이라는 경전에 기초한 구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불상 제작 과정의 배후에 존재한 수준이 높은 사상과 그것을 이해하고 제작한 기술자들의 기량은 주목받을 만한 것이다.

■法隆寺 금당 약사여래상(飛鳥시대)
동쪽에 있는 불상이다.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聖德태자의 아버지인 요메이(用明)대왕이 586년에 불상주조를 기원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스이코(推古)천황과 聖德태자가 607년에 절과 불상을 만들었다는 글이다.
그것은 이 불상 제작뿐만 아니라 호류지 창건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글이지만, 명문 내용 그리고 불상의 기법과 양식 등으로는 623년에 만들어진 석가삼존상보다 후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된다.

■금당벽화
금당의 수미단 아래는 흙벽으로 되어 있고 기둥의 간격에 의해 사면의 큰벽과 8면의 작은 벽이 있다. 벽화 주제는 금당안의 동서남북 방위 좌우대칭의 배치에 의해 구성되어 있고 동쪽 큰 벽에는 석가정토도, 서쪽에는 아미타정토도, 북쪽에는 미륵정토도와 약사정토도가 그려져 있다. 당시 아미타와 약사라는 주존의 성격과 도상적인 지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여겨진다.
아미타여래는 관음, 세지와 연지가, 석가는 16 제자가, 또 약사는 12신장 중의 4체가, 미륵은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 벽화의 주제를 놓고 여러가지 이견이 있다. 작은 벽은 그 사이에 있는 관음, 세지와 문수, 보현 등 양협시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12호 벽화로 11면 관음보살과 같은 밀교식 관음보살이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 돈황에서는 당나라초기 7세기 말, 측천무후 시기의 벽화에 처음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외에 수미단 아래 창방 위쪽의 작은 벽에는 산중나한도가, 수미산위쪽의 작은 벽에는 이십면 비천상이 있다.

■法隆寺 금당 사천왕상
녹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사천왕상이다. 중국 남북조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광목천상 광배의 뒷면에「山口大口費」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8세기에 편찬된「日本書紀」중 650년 부분에「漢山口直大口가 천불을 조각한다」라고 하는 기술이 있는데 그와 동일한 사람이라고 추측된다. 그것이 바로 이 사천왕상의 제작 시기를 말해 주고 있다.

■法隆寺 목조오층탑

法隆寺 목조오층탑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7세기의 목탑이다. 아스카시대 건축의 특징인 공포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2중 기단 위에 세워지고 높이 31.5m이다. 체감률이 커서 5층은 1층의 절반이 되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2층과 3층의 공포 구성에 있어서 첨차와 구름형태인 소로를 1층보다 작은 것을 사용하고, 4층에서는 인접한 첨차를 연결하고 1개 소로를 공용했다. 그러한 자유스러운 설계방식은 후대의 목탑에서 볼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 건축이 규격화되기 전인 것을 말해 준다.
일층 처마 밑에 한층 낮게 덧댄 차양 부분은 양식적으로 금당에 있는 것보다 좀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법륭사 목조5층탑, 단면도


심초석은 지하 3m에 있다. 1층 사면에는 711년에 만들어진 소상 93개가 있고 나라시대 초기의 대단히 높은 예술적인 표현력을 알 수 있다. 동면 소상은 維摩居士와 문수보살이 문답하는 장면이다. 북면은 석가의 입적 장면이다. 서면은 사리를 나누는 장면이다. 남면은 미륵보살의 설법장면인데 미륵보살상 이외의 소상들은 근세에 추가된 것이라 미륵보살상만이 국보로 지정받았다.


■法隆寺 대강당
925년에 소실되었다가 990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法隆寺 경당
8세기에 건설되었고 원래는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었다.

■法隆寺 식당
8세기에 건설된 건물이다.

■法隆寺 大寶藏殿(대보장전) 목조百万塔(백만탑)
대보장전은 국보급 문화재를 보관하는 시설이다.
목조백만탑은 770년에 국가진혼과 국민결합을 기원하여 100만개 만들어졌다. 작은 목탑 안에 목판으로 인쇄한 다라니경(陀羅尼經)을 끼웠다.

■法隆寺 大寶藏殿 유메타가에(夢違)관음상
유메타가에(夢違)관음상은 7세기 후반의 불상이다. 나쁜 꿈을 좋은 꿈으로 바꿔 준다고 전해진다.

■法隆寺 大寶藏殿 구다라(百濟)관음
녹나무로 만들어진 7세기 불상이다.
구라쯔쿠리노토리(鞍作鳥?鞍作止利)가 이끄는 집단이 만든 불상과는 그 모습과 분위기에 있어 명백히 차이가 있다. 백제에서 전래된 불상이라고 전해져서 백제관음이라고 부르지만 전래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유력하다.

■法隆寺 大寶藏殿 금당 벽화 비천도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에 금당 벽화로 그려지고 1949년에 소실되지 않던 일부분이다.

■法隆寺 大寶藏殿 다마무시노즈시(玉蟲廚子)
높게 칠을 한 2.3m인 감실이며 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투조 밑에 다마무시(비단벌레)의 날개를 깔고 있기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나 날개는 현재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본래는 금당 안에 안치되어 작은 아미타삼존상을 모셨다고 말해진다.고대건축의 정교한 모형으로 건축기법은 금당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오래된 건축양식이다.

■백제관음

백제관음상


입체의 신표현법을 추구한 乾漆像(건칠상)이다.
문자 그대로 팔등신의 날렵한 모습은 청초한 얼굴과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현재 백제관음의 애칭으로 친숙해져 있다. 元祿(원록) 12년(1698)의 기록에는『虛空藏菩薩(허공장보살), 백제에서 전래 운운』으로 보이고, 금당에 모셔졌다고도 알려졌지만, 그 이전의 내력은 알 수 없다. 明治(명치)후반에 들어서, 정면에 관음을 의미하는 아미타(阿?陀)의 화신(化身)을 조각한 관이 발견되어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의 표현에 대해서는 그 이전의 만들어진 관음 등과는 명확하게 다른 입체적인 표현기법이 나타난다. 왼손의 손끝으로는 가볍게 물병(水甁)을 쥐고 오른쪽의 손바닥에 무엇인가 올려놓은 듯한 양팔의 움직임이나 양팔꿈지의 앞뒤로 물결같이 늘어뜨린 천의(天衣)자락, 양쪽 가슴과 하복부 등은 살짝 부풀린 육체 위로 표현되어져 있다.

■法隆寺 동대문
대보장전(大寶藏殿)을 나와 동원(東院)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리잡은 8세기의 대문이다.

■法隆寺 東院 유메도노(夢殿)


東院은 聖德태자 집인 이카루가노미야(斑鳩宮)터에 태자를 기리고자 739년에 건설한 가람이다. 739년 창건 당시 건물이지만 가마쿠라(鎌倉)시대 13세기의 수리사업으로 원래 건물보다 깊숙한 처마가 되고 지붕의 물매가 싼 지금 모습이 되었다.

■法隆寺 東院 夢殿 구제(救世)관음
녹나무로 만들어진 아스카시대 7세기의 불상이다. 키가 聖德태자와 똑같다고 하는데 평소 공개되어 있지 않다.

■法隆寺 東院 덴포도(傳法堂)
8세기에 건설된 건물이다. 쇼무(聖武)천황의 아내의 집을 개조한 것이라 당시 귀족의 주택을 알기 위한 귀중한 건물이다. 원래는 편백나무 껍질로 이은 지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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