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 박물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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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8일 일요일
오늘의 행로


이도 오까야마(岡山)성 교토역 고오류우지(廣隆寺) 야사카신사(八坂)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기요미즈야끼(淸水燒) 미미즈까(耳塚) 도요쿠니신사(豊國) 호오코오지(方廣寺) 숙소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8세기말 또는 9세기 초엽이라고 추정된다. 현재 건물은 거의가 에도시대 것이며 국보급 건물이 많다. 관음 신앙과 벚꽃놀이 그리고 단풍의 명소다. 1633년에 건설된 본당은 헤이안(平安)시대(9-12세기) 양식을 모방한 건물이며 벼랑 끝에 만들어진 舞台造(懸崖造)(무대조,현애조)라고 불리는 형식의 건물이다. 본당의 넓은 마루는「淸水의 舞臺」(청수의 무대)로 유명하며 높이 15m의 나무 기둥 139개가 받치고 있다. 무대에서는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기요미즈야키(淸水燒)

청수사(淸水寺)가 있는 히가시야마(東山) 일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이다. 19세기 초엽 이후 교토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주류가 되었다. 기원이 8세기 중엽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다도의 번성에 따라 기술도 발달했다고 한다.

미미즈카(耳塚, 이총)


정유재란 때 풍신수길이 일본군의 전과를 증명하기 위해 한국인들의 귀나 코를 자르고 일본에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승리를 위장하기 위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자른 귀나 코를 묻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앞을 험상궂은 얼굴로 지나가는 통신사 그림도 그려졌다.

도요쿠니(豊國)신사 호오코오지(方廣寺)


미미즈카 바로 앞에 있고 풍신수길을 신으로 모신 신사와 절이다. 동쪽 언덕 위에 풍신수길의 무덤이 있다. 무덤과 신사는 선린관계가 해소되고 침략주의를 선택한 명치시대에 들어 정비되었다.
方廣寺(방광사)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고 나라(奈良)의 도오다이지(東大寺)보다 큰 20m 불상을 설치하기 위해 풍신수길이 건립한 절이다. 지진으로 붕괴당한 대불을 아들인 히데요리(秀賴)가 재건했다가 그 직후에 대판전쟁이 벌어지고 도요토미(豊臣) 일족은 멸망되었다. 1719년에 그곳에서 연회를 베풀려고 한 것을 통신사가 알아서 야단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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