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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9일 월요일 오늘의 행로
후시미모모야마죠 (伏見桃山城) 안동야마고분(行燈山) 시부타니무오코야마 고분(澁谷向山)
도오다이지(東大寺) 하시하까고분(箸墓) 아스카데라(飛鳥寺)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이시부타이고분 (石舞台) 시마노쇼(嶋庄)유적 가와라데라(川原寺) 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고분 (見瀨丸山) 숙소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7세기 초엽에 축조된 고분이다. 일찍이 봉토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형태를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상원하방분(上圓下方墳)이라는 주장과 상방하방분(上方下方墳)이라는 주장이 있다. 봉토의 한 변의 길이는 50m이며 도랑을 포함해서 한변의 길이가 81m이다. 구릉 끝을 끊고 축조된 고분이다.
횡혈식석실이 거대하고 길이가 19.4m이다. 현실의 길이 7.7m, 폭 3.5m, 높이 4.7m이며 선도의 길이 11.7m가 된다. 천정 돌의 무게는 77t이 된다. 현실은 벽면을 닦아서 반들반들하다.

石舞台고분 한구석에서 크기 10m정도의 원형무덤이 7기 발견되었다. 그 중 3기는 石舞台고분 축조로 인해 파괴되었었다. 도읍 축조로 인해 고분이 파괴된 사실은 있었지만 고분을 축조하기 위해 다른 고분을 파괴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 사실은 매장된 사람이 생전에 큰 권력자였던 것을 말해 준다.

고분의 규모와 연대?이미 존재했던 고분을 파괴한 점?고분 옆에도 蘇我馬子(소가우마코)의 집이 존재한 점 등으로 매장된 사람이 626년에 죽은 蘇我馬子인 가능성이 높다.

백제계 소아마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석무대고분

 

시마노쇼(嶋庄)유적
石舞台고분 바로 옆이 그곳이다. 7세기의 연못 유적, 돌을 깐 도랑, 건물 등의 흔적이 발굴되고 세 시기에 걸친 유적이 발견되었다. 蘇我馬子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연못은 한변 42m, 깊이 2m이다. 시대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부여 관북리 왕궁터의 연못과 비슷한 구조이다.

다카마츠고분(高松塚)벽화
벽화는 남쪽으로 묻혀진 석실 내벽에 그려져 있다. 석실 안의 크기는 103센티, 너비는 265센티, 높이는 113센티이고, 벽화는 법륭사의 금당벽화같은 거대한 벽면이 아니다. 적석을 쌓아올려 평평한 내벽에, 회칠을 하고 벽면을 고르게 해서, 그 위에 벽화를 그렸다. 덧붙여 그려진 여자像의 크기는 38센티 전후이다. 도굴로 남쪽벽 윗부분이 흘러내려 구멍이 나있고, 내부의 남쪽은 비바람과 흙의 유실로 훼손되어있다. 남쪽벽은 회칠도 떨어져, 벽화를 확인 할 수 없다. 동, 서, 북쪽 벽과 천정의 벽화는 좋은 상태로 남아있다. 천정에는 별자리, 동서양벽 중앙에는 청룡(동),백호(서), 청룡의 위에는 태양, 백호 위에는 달이 산과 함께 그려져 있다. 동서벽의 북쪽근처에는 각각 4명의 여자의 군상이, 남쪽벽의 근처에는 4명의 남자의 군상이 배치되어있다. 북쪽 벽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고, 그 맞은편 헐린 남쪽 벽에는 주작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동서남북 각각의 수호신으로 四神이라 불린다. 해와 달은 태양과 태음의 핵심이다. 이 음양 이원소는 만물의 운행을 상징한다.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하늘이고 지상에서는 天子라 한다.

다카마스고분 벽화

 

별자리(星圖)는 천정 중앙 약 1미터사방에 네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직경 9밀리 정도의 원형에다 금박을 입힌 별과, 별들을 붉은선으로 연결한 성좌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고대의 별자리는, 중앙부에 자미단(紫微壇), 태미단(太微壇), 천일단(天一壇) 삼단을 두고 그 주위에 이십팔좌를 배치해서 편성했다. 다카마츠총의 별자리는 태미, 천일의 2단(二壇)은 빠져있지만 북극성을 중심으로한 자미단을 중앙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칠성좌를 사방에 배치해서 이십팔좌 전부를 나타내고 있다. 별자리는 중국이나 고구려의 고분에 자주 그려져 있지만 간단한 것이 많고 다카마츠총의 별자리는 현재 최고(最古)로 정돈되어진 별자리이다. 일월(日月), 사신(四神), 별자리는 서로 관련되어있고 이것이 다카마츠고분 벽화의 주제이다.
손상이 심한 남자군상 동서양쪽벽의 남측에는 각각 남자군상이 그려져 있지만, 도굴과 침수로 상당히 손상되어있다. 남자는 각각 관을 쓰고 긴 상의를 느슨하게 감고 깃은 단추로 여미고 소매에는 다른 색의 장식을 둘렸다. 하반신은 바지형태의 주름이 잡힌 흰 옷을 입었고 검은 구두를 신고 있다. 옷의 색은 황(黃), 녹(綠), 청(靑), 엷은 검은색으로 여겨진다. 동쪽벽의 남자 두사람은 오염으로 인해 세부 묘사는 불명확하지만 좌측 끝 남자는 겨우 오른쪽 눈에서 입술의 근처에 걸쳐서 수염이나 턱수염이 확인되어지고 위엄이 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 옆의 남자는 비단으로 된 햇빛가리개를 우측끝의 남자에게 받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손을 들고 양손으로 비단으로 된 햇빛가리개의 긴 손잡이를 쥐고있다. 뒤쪽의 남자는 큰칼을 넣은 붉은 색의 주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왼손으로 그 아래를 받치고 있다. 후방을 뒤돌아보는 남자는 노랑색 주머니를 어깨에서 끈으로 늘여드려 앞쪽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잡고있다. 서쪽벽에는, 왼쪽끝 남자는 양손으로 접은 형태의 의자를 안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 남자는 왼쪽어깨에 창을 넣은 붉은색 주머니를 매고있다. 다음의 남자는 동쪽벽의 남자와 똑같은 노랑색의 주머니를 걸고 있다. 오른쪽 끝의 남자는 끝이 구부러진 긴 자루모양의 물건을 메고 있다.
동서 양벽의 북측에는 각각 남쪽을 향해서 느긋하게 열을 지어 걷고있는 4명의 여자군상이 그려져 있다. 8인 모두가 머리는 뒤쪽으로 늘어뜨린 부분을 틀어올린 듯하여 흰 끈으로 묶고있다. 긴 치마를 입고 긴 상의를 걸쳐 왼편으로 여며입고 있다. 소매는 단추나 끈으로 리본모양으로 묶고, 가는 허리끈도 나비모양으로 묶고있다. 치마의 단에는 주름모양의 장식이 달려있다.
동쪽벽 여자군상 중 선두의 여자얼굴은 거의 떨어졌지만 머리와 그것을 연결하는 빨간 리본과 턱부분으로 확인된다. 양손은 소매 안에 넣고, 손잡이가 긴 붉은 부채를 들고 있다. 그 치마단 밑으로는 오른쪽 신발 끝이 보인다. 왼쪽 끝의 여자는 흰털이 붙은 채를 오른손에 들고 가볍게 어깨에 대고 있다. 서쪽벽에는 동쪽벽과 마주보는 구도를 나타내고 제일 앞에 있는 여자는 양손을 모아서 소매에 넣고 녹색의 부채를 들고, 뒤의 여자는 양손을 가볍게 쥐고 허리에 대고 있다.

다카마스고분 벽의 사신도

이 남녀군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장례식을 그린 것인지 공식행사를 그린 것인지, 설들이 분분하지만 정설은 아니다. 또한 남녀의 의복에 대해서 天武天皇 11년과 大寶元年에 내린 제정의 복안에서 해석되었지만 모순점이 많아서, 납득될 만한 해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남녀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특정의식과 관련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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