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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9일 월요일 오늘의 행로
후시미모모야마죠 (伏見桃山城) 안동야마고분(行燈山) 시부타니무오코야마 고분(澁谷向山)
도오다이지(東大寺) 하시하까고분(箸墓) 아스카데라(飛鳥寺)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이시부타이고분 (石舞台) 시마노쇼(嶋庄)유적 가와라데라(川原寺) 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고분 (見瀨丸山) 숙소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

16세기말에 풍신수길이 건설한 성이다. 그가 죽은 다음에 德川家康(도쿠가와이에야스)이 그곳에서 정국을 지휘했다. 1605년 봄에 유정(사명대사)과 손문욱 등 탐적사가 德川家康을 만난 곳이 복견도산성은 당시의 복견성을 화단지에 복원한 것이고 실제로는 유정대사가 덕천가강을 만난 곳은 복견성임 伏見桃山城(복견도산성)이다.

나라(奈良) 지역

710년에 아스카지역에서 천도되어 784년까지 수도였다. 그것은 일본이 율령제(律令制) 통일국가로 형성되어 간 시기였다. 나라에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으로 불리우는 호류지(法隆寺)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도오다이지(東大寺)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도오다이지(東大寺)

높이 16m인 비로자나불(大佛)로 이름난 절이다. 743년에 건설이 계획되고 800년경에 완성되었다. 가람은 금당인 대불전 앞에 동탑과 서탑이 있고, 뒤쪽에 강당이 배치되어 있었다. 불교사상으로 국가진호와 국가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세운 절이었지만, 이를 위해 많은 희생자와 막대한 돈이 들어서 이후 정치는 쇠퇴되어갔다. 당시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어서 대불의 일부분, 금동제 등롱, 일부 건물들 뿐이다.

■낭다이몽(南大門)
1203년에 만들어진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국보로 지정받은 것이다.
그 시대 조각의 특징인 사실적 수법을 알 수 있다. 높이 약 8.5m. 남대문은 중국 송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고 재건되었다. 재건에 협력한 송의 석공이 만든 석조 사자상 2개가 있다.

■東大寺 금동팔각등롱
높이 4.6m이며 창건 당시의 것이다. 현재 보존공사중이라 공개되어 있지 않다.

■東大寺 大佛殿(대불전)?비로자나불
747년에 주조를 시작하고 749년에 비로자나불 주조가 끝났다. 그 다음에 금을 바르고 수년후에야 완성되었다. 752년 비로자나불 개안 때에는 인도인 스님이 공양을 주도했고 1만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또 신라에서는 김태염이 700여명을 이끌고 참석했다.
비로자나불과 대불전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까지 260만명이 동원되었다.
높이 16m, 얼굴 길이 4.8m, 눈 1.18m, 귀 2.58m, 손바닥 1.98m이다.
첫 번째 대승정(大僧正)을 行基, 두 번째를 良弁, 재정담당을 秦朝元, 공사 전반을 佐伯今毛人, 비로자나불 주조의 책임자를 國中連公麻呂가 맡았다. 모두 다 도래씨족 출신이고 國中連公麻呂의 할아버지 國骨富(국골부)는 663년에 도래한 백제의 관리였다. 비로자나불에 바른 황금 900兩은, 일본 동북지방을 지배하던 백제 의자왕의 4대 후손인 백제왕경복(百濟王敬福)이 헌상한 것이다.

창건 당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비로자나불의 무릎과 연화좌의 일부분뿐이다. 연화좌에는 우주인 연화세계가 그려져 있다. 대불전과 회랑은 1709년에 재건된 것이며 창건시의 3분의 2 규모다. 대불전은 동서방향 57m이지만 창건 당시 대불전은 약 90m였다.
대불전 서쪽의 발굴조사 결과, 대불전을 건설하기 위해 대규모적이고 계획적인 공사를 실시한 것이 밝혀졌다. 서쪽의 회랑 부근에서, 골짜기 밑바닥에 2.5m높이로 흙을 쌓고 대불전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밝혀졌다. 비로자나불은 아래에서 8번에 나누어 주조하였고 많은 흙을 사용했다. 그 결과 비로자나불이 완성될 때에는 거대한 언덕이 생겼다. 그 언덕을 무너뜨리면서 최종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한편 그 흙으로는 매립 공사를 했다.

 

동대사 대불전과 팔각등

 

■東大寺 동종
창건 당시인 天平시대의 동종이다. 높이 약 4m. 종각은 13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東大寺 오오유야(大湯屋)
건설된 연대는 알려지지 않지만 중세의 목욕탕 건물로 귀중하다.
■東大寺의 멋진 흙담길
유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탕옥(大湯屋)에서 이월당(二月堂)까지 멋진 흙담 길을 올라간다.

■東大寺 니가쯔도(二月堂)
1669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벼랑 위에 있고 교토(京都)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와 비슷한 구조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나라시내의 조망이 멋지다.

■東大寺 상가쯔도(三月堂)
건물 왼쪽 부분이 東大寺에서 가장 오래된 창건 당시의 건축이다. 오른쪽 부분은 가마쿠라(鎌倉)시대 13-14세기의 건축이다. 건축양식의 차이를 알 수 있다.

■東大寺의 아제쿠라(校倉)창고
東大寺 소쇼인(正倉院)과 같은 구조의 창고 건물이 두 채 있다. 正倉院보다 작은 것이지만 이것 역시 중요문화재로 지정받는 건물이다.

■東大寺 동탑터
756년에 완성된 높이 97m인 칠층탑이었지만 옛날에 소실되어 기단만 남아 있다. 서탑도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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