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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9일 월요일 오늘의 행로
후시미모모야마죠 (伏見桃山城) 안동야마고분(行燈山) 시부타니무오코야마 고분(澁谷向山)
도오다이지(東大寺) 하시하까고분(箸墓) 아스카데라(飛鳥寺)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이시부타이고분 (石舞台) 시마노쇼(嶋庄)유적 가와라데라(川原寺) 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고분 (見瀨丸山) 숙소

아스카(飛鳥) 지역
나라(奈良)현에서 유적지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일본 고대국가 성립 시기에 바로 이 지역이 정치적 중심지가 되고 새로운 정치이념과 정치형태로서의 불교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지역이다. 도래인들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스카(飛鳥)문화
아스카(飛鳥)문화란 6세기 후반부터 7세기에 飛鳥지방을 중심으로 번영한 불교문화다.
절을 건설함에 있어서는 불당 건설뿐만 아니라 절을 운영하기 위한 시설의 배치나 토목 계획 등 통일적인 기본설계가 있어야 일관성 있는 조영사업이 가능했다. 불교문화가 번성한 한반도와의 접촉이란 일본열도에 새로운 사상과 기술적 혁신을 가져왔다. 삼국과 중국 남북조의 영향, 나아가서는 서역문화의 파급도 확인된다. 飛鳥문화 형성에 도래인이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6세기 후반에 백제가 파견한 학자?기술자들의 큰 영향을 주었다.

아스카데라(飛鳥寺)
이미 飛鳥寺를 건설하기 전에 호족 개인의 절이 몇 개 존재했지만 본격적인 가람을 구비한 것으로서는 일본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절이다.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가 불교를 받아들일 것에 반대한 모노노베(物部)씨를 무너뜨린 다음 해인 588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7세게 초엽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인 젠토코(善德)가 첫 번째 주지스님이 되었다.

588년 : 백제가 불사리와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파견했음.
590년 : 건설하기 위한 목재를 벌채하기 시작했음.
592년 : 금당과 회랑이 완성되었음.
593년 : 불사리를 탑 초석에 모셨음.
596년 : 탑이 완성되었음.
606년 : 금동석가삼존상을 모셨음.
609년 : 금동석가삼존불이 완성되고 飛鳥寺 건설공사가 거의 종료
7세기 : 불교의 중심지가 되는 동시에 정치적 사건의 현장으로 기록에 자주 그 이름이 나옴.

당시 건물은 사라졌지만 석가여래상 머리와 손의 일부가 남아 있고 창건시의? 아스카지역 지도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발굴조사로 인해 확인되었다. 그 불상과 호오류우사(法隆寺) 석가삼존불상은 백제계 도래 씨족인 아야(漢)씨족 쿠라쯔쿠리노도리(鞍作止利)가 만든 것이다. 그는 5세기 전반기에 백제에서 건너온 시바타또(司馬達等)의 손자다. 덧붙여서 도리(止利)란 개인 이름이 아니라 전문가집단을 이끄는 사람의 호칭이다는 학설도 있다.
가람배치는 목탑을 금당 3개가 둘러싸는 형식이며 넓이 남북 300m, 동서 200m이다. 고구려 금강사(청암리폐사), 정릉사와 비슷한 가람배치와 규모였다. 飛鳥寺를 설계했을 때 高麗尺(고려척)(1척=35.6cm)을 자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8세기 이전의 절들에 공통되는 단위다.
기와는 6세기 말에 절을 건설하기 위한 기술의 일부로 백제에서 도입되었고 맨처음에 아스카데라(飛鳥寺) 지붕을 기와로 이었다. 비조사 동남지점에서 기와를 구운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부여 시대 백제의 기와와 아주 비슷하다.

비조사 대불

 

금당의 이중기단은 높이 1m이상이었다고 추측된다. 아래쪽 기단에서도 초석이 발견되었다. 부여 정림사 금당터 아래쪽 기단도 그렇다고 한다. 그것은 복잡한 공포를 만들 필요 없이 큰 처마를 버티고 웅장한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스카지역 지도


비조사는 일본 최초의 불교 사원일뿐아니라 기와를 얹져 만든 최초의 건축물로 알려짐. 발굴시 많은 백제계 유물이 발견됨.


비조사 등 7세기의 절은 남문보다 중문이 규모가 더 크지만 100년 후에 건설된 8세기의 法隆寺는 남문이 더 크다. 절 전체를 웅장하고도 엄숙히 느끼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백제인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일본 고대사찰 기와


지하 2.7m에 있는 탑 심초석에서 고분의 부장품과 공통되는 것이 출토되었는데 고분시대의 전통적인 문화 위에 새로운 불교 문화가 정착한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심초석 크기는 동서 2.6m, 남북 2.4m이다. 일반적으로 초기의 심초석은 飛鳥寺와 法隆寺와 같이 땅을 파서 지하에 놓았고, 다음 시기의 심초석은 가와라데라(川原寺)와 같이 기단 주위의 땅바닥과 같은 위치에 놓았으며, 8세기에는 도오자이지(東大寺)와 같이 기단 윗면과 심초석 윗면이 맞도록 놓았다.

소가(蘇我)씨족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무기로 해서 경제적인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蘇我씨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蘇我씨의 힘은 그러한 도래계 씨족들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점과, 전래된 기술과 지식이 권력에의 길을 닦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신화?전설의 시대부터 많은 일화를 남긴 호족 모노노베(物部)씨와는 달리 蘇我씨는 연대가 지나서야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시야와 지식에 기초한 蘇我씨의 정책은, 동아시아의 격동하는 상황 속에서 그 이후의 일본역사의 방향을 규정짓고 또한 문화의 성격에 대해서도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했다. 5세기 말에 건너온 백제 관리였던 소가노만치(蘇我滿智)의 아들 이름이 가라코(韓子)이며 손자 이름이 고마(高麗)이다. 그리고 高麗의 아들인 이나메(稻目)는 大臣이 되고 蘇我씨는 우마코(馬子)?에미시(蝦夷)?이루카(入鹿)까지 계속되는 그 일족이 飛鳥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마카시노오카(아마카시노 언덕)
飛鳥寺 서쪽의 언덕이다. 소가노우마코(馬子)?에미시(蘇我蝦夷) 부자의 집이 있었던 언덕이다. 당시 호족의 집이나 절이란 방위적인 기능도 있었기에 개인의 집이라 하더라도 산성과 비슷한 기능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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