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 박물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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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8일 일요일
오늘의 행로


이도 오까야마(岡山)성 교토역 고오류우지(廣隆寺) 야사카신사(八坂)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기요미즈야끼(淸水燒) 미미즈까(耳塚) 도요쿠니신사(豊國) 호오코오지(方廣寺) 숙소


안코쿠지(安國寺)

이 지역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맛있는 식수가 없어서 통신사를 대접하기 위해 오카야마(岡山)藩이 판 깊은 우물이다. 우물가에「朝鮮人來朝...」라고 그 인연이 새겨져 있다. 지금도 물이 나오고 동네 사람들이 이용한다. 어다옥(御茶屋)터 근처에 있다.


교토(京都) 지역

794년에 나라(奈良)지방에서 천도된 이후 형식적으로는 1868연 메이지(明治)유신까지 1000년간 수도였다.

오까야마성


메이지 유신때에는 40개 이상이나 되는 천수(天守)가 남아 있었으나, 현대화되면서 과거 봉건시대의 쓸모없는 유물로 여겨졌음인지 많은 수의 천수가 파괴되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에 손상을 입게 되어 그중에서도 오카야마성, 오오가키성(岐皐縣), 히로시마성, 후쿠야마성등의 천수를 잃었으며 소화24(1949)년에는 또 다른 후쿠야마성(福山성)의 천수가 소실되는등 현재에는 12개의 天守만 존재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천수는 마루오카성(丸岡城)의 천수로 1576년 후쿠이현에 세워진 것이다. 천수란 용어는 무로마찌시대 말기 大名의 저택 지붕 위에 솟은 망루 형식에서 비롯되었으며 가장 완벽한 성의 형태로는 히메지성과 마쯔야마성의 것을 들 수 있다.

고류지(廣隆寺)
신라계 씨족인 하타노카와카쯔(秦河勝)가 603년에 쇼토쿠(聖德)태자로부터 받은 불상을 622년에 모신 절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2개 있는데 둘 다 아스카(飛鳥)시대 불상이며 신라양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 중 하나가 한국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름난 것이다. 그 당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불상의 재질은 모두 녹나무였지만 그것은 적송을 조각한 것이라 한반도에서 전래된 불상인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양식적으로 백제에서 전래된 불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인자한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특별한 감명을 준다.
5세기쯤에 도래한 하타(秦) 씨족은 토목?농업?양잠?직물 등의 기술을 잘해서 이 지역은 고대일본에서 생산력이 높은 지역의 하나였다. 고류지(廣隆寺)가 있는 지역 이름은 우즈마사(太秦)인데 `우두머리'가 그 어원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또 하타(秦)의 어원은 `바다'이며 원래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海人)'을 의미했던 것이 후에 씨족 명칭으로서 특정 씨족을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덧붙여서 백제계 씨족인 아야(漢)씨족의 어원은 아라(安羅)이며 후세에 도래인의 총칭 또는 특정 씨족 집단의 명칭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아스카데라(飛鳥寺) 석가여래상, 호류지(法隆寺) 석가삼존상 등은 아야(漢)씨족인 구라쯔쿠리노토리(鞍作止利) 산하의 佛師(불사)들에 의한 것이라 백제 양식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고류지에 있는 일본국보 제 1호 목조미륵 반가사유상

 

야사카(八坂)신사

그 신사에 전해진 바에 따르면 656년에 도래한 야사카(八坂)씨가 667년에 신라 牛頭山(우두산)의 신을 모신 곳이 야사카(八坂)신사라고 한다. 야사카(八坂)씨족이란 교토(京都) 남부지역에 살고 있었던 고구려계 씨족인 고마(高麗)씨족으로부터 갈려나온 것이라고 한다. 4-5세기 교토(京都)지방에서는 고구려계 고마(高麗)씨족과 신라계 하타(秦)씨족이 가장 유력한 호족이었다.

야사카노토오(八坂塔)

589년에 쇼토쿠(聖德)태자가 건립했다는 설과 678년에 고구려계 고마(高麗)씨족인 야사카(八坂)씨가 건립했다는 설이 있다. 원래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서는 시텐노오지(四天王寺)식 가람배치였지만 현재는 1440년에 재건된 목조 5층탑만이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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