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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답사의 의의
- 답사 그림 및 여정도
답사일정표
조선통신사 여정
이즈하라 시내지도(대마도)
- 답사지 소개

대마도(對馬島) 지역
이즈하라(嚴原) 지역
세이잔지(西山寺)
가네이시죠(金石城)
반쇼인(万松院)
대마(對馬) 역사민속자료관
죠오쥬인(長壽院)
슈젠지(修善寺)
도모노우라 지역
안코쿠지(安國寺)/ 아미다지(阿彌陀寺) /우시마도(牛窓) 지역
이도(井戶,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 / 오까야마성
고류지(廣隆寺) / 야사카(八坂)신사 / 야사카노토오(八坂塔)

기요미즈데라(淸水寺)/기요미즈야키(淸水燒)/미미즈카(耳塚, 이총)/도요쿠니(豊國)신사?호오코오지(方廣寺)
후시미모모야마죠(伏見桃山城)/도오다이지(東大寺)
고분시대(3세기후반-7세기)
아스카문화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승지
이시부타이(石舞台)고분
가와라데라(川原寺)/가메이시(龜石)
미세마루야마(見瀨丸山)고분/7세기 아스카(飛鳥)시대 건축의 특징

호류지(法隆寺)

- 문화개관
- 사전답사기
- 교통비 내역
12월 25일 목요일
오늘의 행로
부산 >후쿠오까 공항 >쓰시마 공항> 이시야네(石屋根)창고 >이즈하라시(嚴原) >세이잔지(西山寺) >숙소

대마도(對馬島) 지역

대마도 개관

대마도는 남북 82km, 동서 18km이며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일본 규슈(九州)에서 약 130km, 부산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다. 약 1만년 전에 대한해협과 대마해협이 생겨서 대마도가 섬이 되었다. 높이 500m 쯤 되는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아서 해안선이 복잡하고 아름답지만 섬의 88%가 산림이다. 산이 험하고 평야가 많지 않기에 땅이 메말라 농사에 적당하지 않다. 그 때문에 옛부터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무역한다는 기록이 많다.
대마도에서 제일 오래된 유적은 약 8000년전 것인데 출토품은 일본열도 규슈(九州)의 문화권에 속하면서 한반도와 관련이 깊던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한편 경남 김해 부근의 유적에서는 일본열도에서 보편적인 B.C 2~3세기까지의 토기 총칭
죠몬(繩文)토기나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출토된다.

8월1일
새벽에 비가 뿌렸다.
사관에는 뜰이 없어 망궐례(望闕禮)를 올리지 못하였다.
늦게야 개고 서남풍이 불므로 돛을 달고 출발했다.
대마도 일기주(주;이끼섬)의 크고 작은 배가 수십리에 뻗쳐 있고, 대마도의 푸른배와 일기도의 흰 돛들이 역력히 눈에 들어와 참으로 장관이었다. 한참 뒤에 바람이 점점 느려지면서 배의 속도가 아주 더디었다. 동남쪽 바다를 바라보니 아득히 치마띠를 둘러 놓은것과 같은 땅이 보여 자못 신기했다. 왜인들의 말로는 이것은 모두 축전주(筑前州)의 땅인데, 평호도나 장기도 등도 또한 저 산 너머에 있다고 했다.
밤이 들자 각 배마다 너댓개의 등불을 밝히니 불빛이 수천만점이나 되었다. 큰 바다 가운데 등불이 총총 무리지어 원근의 경치가 찬란하게 비치었다. 우리나라 사월초파일 광릉의 관등놀이가 좋다지만, 이에 비하면 구슬을 희롱하는 사람의 잔재주에 불과하다 할것이다.
삼경이 되어서 남도(藍島)에 닿았다. 남도는 축전주 소속인데, 위쪽에는 푸른산이 삼면을 반달처럼 둘러싸고, 그 한가운데는 기름진 들이 넓고 민가와 농토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항해한 이래 처음 보는 신선경이었다. 태수(太首) 원선정(源宣政)은 연봉이 52만석이고, 여기에서 동남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복강(福岡,후쿠오카)을 다스리고 있었다.
복강 10리 밖에 박다진(朴多津)이 있다. 이곳은 신라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의(義)를 위해 죽은 곳이고 포은 정몽주 선생이 사신을 따라 왔다가 억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왜인들에게 이 일을 물어도 옛 일은 모른다고 한다. 아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숨기려는 것이리라.
우삼동이 남도에서 내게 보낸 시에 '웅장한 관문에 달이 패가대(覇家臺)에 비친다'.는 귀절이 있기에 패가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동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박다진인데, 일본음으로 화가다(和家多)라고
읽는다. 귀국의 문충공 신숙주가 사신으로 왔을 때 필록(筆錄)에 패가대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음을 옮길 때 와전된 것이지만 그 뜻이 매우 아름다와서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이상 신유한 공의 글귀에서 묘사의 뛰어남과 역사를 투시하는 통찰력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많이 묘사하였다. 그러나 도에 어긋난 행동이나 예절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여 당시 접대를 담당하던 왜인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한 전체의 글월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풍습과 생활에 대해 많이 언급을 하여 당시의 조선과 비교를 하였다. 때로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합리적인 관습에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시야네(石屋根) 창고
대마공항 앞 길가에 이시야네(石屋根)창고가 이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광용으로 복원된 것이지만, 원래 건물 안에 옷, 곡물 등을 간직한 소박한 창고다. 옛날 농민들은 지붕을 기와로 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바람과 불을 막기 위해 점판암으로 지붕을 인 것이다. 그 기원을 알지 못하는데 옛날에는 대마도 각지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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