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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고향, 마이엔펠트를 가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많은 사람들이 대충의 내용을 기억하지만 확실히 읽어 본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명작동화라는 이름으로 소개 된 바 있다 .이러한 동화책은 일본 만화계의 거장인 다카하타이사오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애니메이션에 큰 영향을 받았다. 루팡, 빨강머리 앤은 그의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의 하이디에 대한 상식은 이런 범주를 넘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배경이 된 마이엔펠트에 가기로 한 것은 관광대국인 스위스에서 하이디마을의 재현에 어떠한 형태와 컨셉을 가지고 했느냐는 것이 주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유명인사들의 생가 복원을 했지만 제대로 검증할만한 곳은 손에 꼽는다. 하이디하우스는 비록 생가는 아니지만 소설속의 장면을 재현했기에 이같은 관심을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쥐리히의 날씨는 아침에 뿌린 이슬비에 흠뻑 젖은 자작나무 만큼이나 가을 초입에 이미 와 있었다. 쥐리히에 도착하기 전 “알프스의 소녀”의 abridged edition판을 구해 읽어 보았던 터라 하이디 소설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쭉 그려왔었다. 하지만 비까지 뿌린 흐린 날씨라 기대반 실망반으로 KLOTEN 공항에서 SBB안내 카운터로가 소설의 배경이 된 『MAIENFELD』로의 티켓을 끊었다. 9시13분 ZRUCH FLUHAFEN(쥐리히공항) 출발하여 ZURICH HB(쥐리히 중앙역)에 9시 23분 도착해 9시 33분 SARGANS 역까지의 기차를 갈아탔다. 쥐리히의 동남부에 있는 SARGANS에서부터 MAIENFELD까지는 한시간 가량 소요되어 이제부터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먼저 커피 한잔을 시켜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쥐리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SARGANS까지의 철도는 국도 A3와 나란히, 길다랗게 펼쳐진 쥐리히 호수를 따라 연결되어 있고 차창밖에는 여러 형태의 집들이 호수와 한 몽인 것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유럽에도 비가 많이 왔다더니 호숫물의 수위가 많이 올라와 몇채의 집은 거의 호숫물에 닿아 있는 지경이다. 이 호수 건너편 어딘가에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작가 요한나 슈피이리가 젊은 시절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철도변의 모습을 뇌리에 각인시키려 애써면서 멀리 차창밖을 바라본다. 이윽고 호수가 끝이 나면서 평야가 펼쳐진다. 낮은 언덕위의 교회당은 적당한 크기로 스위스의 자연속에 그림처럼 표현되고 샬레풍의 전통가옥은 스위스의 자연과의 조화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기차가 SARGANS에 도착했다. SARGANS에서 MAIENFELD까지는 BAD RAGAZ를 지나 한정거장만 가면 된다. BAD RAGAZ는 하이디를 마이엔펠트까지 데려준 이모의 일터가 있는 곳이다. 이곳 SARGANS와 BAD RAGAZ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스위스 마을의 생활의 기반은 학군이나 생활기반시설보다는 자연이 중심인 것 같다. 어느 도시건 어떤 마을이건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할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 철도로 철저하게 연결되어 있는 탓이긴 하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값의 폭등의 현실을 생각하면 부러움이 앞선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위스는 전체가 자연유산이지만 정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4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경주처럼 베른이 중세도시로 일괄지정이 되어 있고 융프라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이 된 상태라 한다. 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을까.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자연과 문화를 가진 나라로 이미 인정이 되어 있는 데 우리나라처럼 기를 쓰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것이 오히려 꼴불견일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보전과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 바로 스위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MAIENFELD까지 도착했다. MAIENFELD역에는 일본인 2명과 함께 내렸다. 그들은 여유가 있는 듯 MAIENFELD TOWN의 읍내를 둘러 보고 올라간다고 했다. 아마 와인과 독특한 스위스 동남부 도시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버스를 대기하면서 마이엔펠트역 근처를 서성거렸다. 1880년에 쓰여진 “알프스 소녀, 하이디” 소설속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THE PRETTY LITTLE SWISS TOWN OF MAYENFELD LIES AT THE FOOT OF A MT. RANGE, WHOSE GRIM RUGGED PEAK TOWER HIGH ABOVE THE VALLEY BELOW" 소설속의 내용은 현실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앙증맞은 거리 모습, 크고 우람한 돌산 아래 놓여 있는 마이엔펠트는 바로 19세기의 마을이었다. 나는 역에 대기하고 있는 HEIDI VILLAGE까지 운행하는 SHUTTLE BUS를 타기 위해 4프랑을 지불했다. 좁다란 시내의 골목길을 구석구석 통과해 올라가기엔 이같은 작은 버스가 제격이다. 스위스건 프랑스건 관광지나 유적지는 길은 확장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려 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관광대국인 것은 바로 이러한 기본 개념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휴양지인 카프리에 가면 차량 한 대가 겨우 올라가는 좁은 길이지만 바로 이런 길에서 카프리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 언제나 같은 모습. 이것은 이들의 커다란 이며 이러한 불편은 감내하려 한다. 하이디소설에 등장하는 내 눈앞의 마이엔펠트의 모습은 120년전 그대로였다. 언덕을 올라가니 HEIDI HOF(하이디 호텔)가 있다. 크지 않은 작은 2층 호텔이고 주변은 포도밭과 배밭에 탐스럽게 열린 과실이 영글어 있다. 여기서 하이디집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라는 데 포장도 안된 좁은 시골길이 한사람이 걷기에 족하다. 흙길을 100M정도 걷다보면 양과 소가 풀을 뜯는 목장을 지나고 이윽고 안내판을 지나 마을 초입에 도착한다. 아! 이 마을이 바로 소설속의 델프리 마을이구나. 이모 데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부모를 여윈 하이디를 할아버지집에 맡기려 데리고 올라 가는 바로 그 길이다. 할아버지는 젊을때의 방탕한 생활로 마을사람들과는 결별하고 소외되고 고집스런 노인으로 표현되어 이곳 델프리 마을사람들은 하이디를 신앙심도 없는 할아버지 집에 맡긴다는 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다. 소설에는 이 델프리 마을은 산의 중턱쯤에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도 산 중턱쯤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 포도밭이 있고 연이어 마이엔펠트마을이 산아래에 고풍스런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데테와 함께 델프리 마을로 올라가면서 마을사람들의 친숙한 말씨에 하이디는 마치 마음속에 그리던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뭏든 소설속의 좁은 길은 버스가 올라가는 한길이 아니라 우측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 었을 것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소를 나무로 조각한 목우가 서 있으며 농가 몇채가 가운데 분수를 중심으로 있다. 일단 하이디마을의 뒷편 아래로 내려가보니 마이엔펠트와 연결된 길이 있다. 마을의 가로수는 오래된 듯했으며 지금은 하이디마을이라 불리는 델프리(DELFRI)마을에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집들은 전통가옥인 샬레풍의 낡은 집으로 과거 스위스가 가난한 소국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 주어 우리네 시골 풍경과 하등 다를게 없었다. 유명한 관광지 답지 않게 조그만 선물가게에서 하이디집 입장권을 사 지금은 전시관으로 된 하이디하우스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이 집은 델프리 마을의 한 농가를 사 하이디집으로 개조하였다 한다. 산 위에 있는 피터의 샘은 마을 어린이들의 모금으로 만들어 졌다니 희생과 절제를 기본으로 한 스위스사람들의 자기 마을 사랑을 보여 준다. 소설속의 집내부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표현했는지가 오늘의 관심사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의 생가”가 재현되어 있다. 하나같이 부자연스럽고 주변 풍경과의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과연 관광대국인 스위스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입장권을 넣으면 자동개찰이 된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 갈수 있는 개찰구를 통과하니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에 주방이 있고 식탁과 타다만 목탄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방금 사용한 것 같은 빗자루와 주방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좌측방은 할아버지가 사용한 방인데 피터와 하이디의 인형이 等身으로 책상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설속에는 아래의 표현이 있다. “할아버지는 오막살이 문을 열었다. 하이디는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 갔다. 상당히 큰방인데 오막살이 아래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자요. (중략) 할아버지 침대 가까운 구석에는 벽에 기대 세운 사다리가 있었다. 그것을 올라가니 건초를 넣어 두는 다락이 있었다 . 거기에는 새로 만든 ,신선한 냄새가 나는 건초의 큰 더미가 있었고 벽에 있는 둥근 창문으로는 골짜기를 바로 내려다 볼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잘래요“ 과연 할아버지의 방 안쪽에는 벽에 기대세운 사다리가 있었다. 좁은 사다리를 올라가니 하이디의 방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소설에는 둥글다는 창문이 네모난 모습으로 되어 방안의 불빛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이디방의 입구는 하이디가 방금 갈아 입은 듯한 옷들이 벽장에 걸려 있다. 하이디 방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 보았다. 하이디가 본 것 처럼 금빛세상은 아니지만 스위스의 한가로운 시골풍경이 한눈에 들어 왔다. 도심에 살은 하이디에게는 이런 곳이 금빛세상일수 있을 것이다. 하이디의 방을 나서니 할아버지의 작업방이 있었고 그 안쪽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번역한 세계명작동화의 “하이디판”을 진열해 놓았다. 한국어 판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에 오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독일인과 일본인이었다. 이날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진지한 독일인과 일본인들 사이로 하이디집의 투어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침나절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여 그야말로 금빛 광선을 비추고 있었다. 지붕에 회색빛 기와를 올린, 나무로 된 벽마감을 한 샬레 가옥의 앞마당은 장작개비와 썰매가 제초도구와 함께 놓여 있고 주변은 나무 울타리로 둘러져 있었다. 나는 뒷 편 언덕으로 올라가 하이디와 피터의 추억이 어려있고 몸이 불편한 주인집 딸인 클라라가 본 마미엔펠트를 보고 싶어 산을 올라 갔다. 전날 세찬비로 인해 진흙탕으로 변해 있는 산길을 일본인 2명과 독일인 부부가 함께 올라갔다. 계곡 곳곳에는 하이디의 그림과 안내판이 우리를 안내하고 VIEWPOINT를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 2시간 올라 갔을까. 그래도 ALM UNCLE(알므 삼촌이라 마을 사람은 부름)의 오두막은 보이지 않는다. 전날의 비 때문에 길은 막혀 있고 건너편 아스라히 조그만 집 한채가 보인다. 끝내 우리는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은 올라가던 길과 다르게 내려 오느라 동행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한시간 반 가량을 오솔길을 따라 하이디산이 소설가에 준 놀라운 영감을 생각하면서 내려 왔다. 내려 오는 어디서건 하이디산의 모습은 보였다. 크고 웅장한 산 모습은 하이디가 느낀것과 다름없었다. “ 피터! 모든 것이 불타 올라 .모든 바위들이 타오르고 저 커다란 눈산도 ,하늘도 타 올라 ,오 ! 아름다운 불같은 눈! 전나무도 봐...모든게 불타 올라.(중략) 이제는 모든 것이 장미빛으로 변했어 ! 눈에 덮인 저 산을 봐. 그리고 저 높은 뾰족한 바위들이 있는 것도 봐 .오! 지금은 회색으로 변하고 있어 .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졌어. 하이디는 모든 것이 끝난것처럼 슬픈 표정이었다." 전나무숲길에서의 상큼한 피톤치드와 눈덮힌 산에서 내려오는 얼음물소리, 시나브로 지는 햇살 역시 소설의 영감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자연이 준 행복감에 사로 잡히고 싶다. 자연과 문화의 조화를 이처럼 극치로 가질수 있는 것은 한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란 믿음이 생긴다. 한길로 들어 서니 하이디호텔이 저만치 보인다. 피곤해 있었지만 나는 내려가는 길을 택하기 보다는 하이디 마을로 먼 길을 되돌아 올라 갔다. 내 딸에게 읽어 줄 하이디 영문판을 사기 위해서다. 오래도록 이 기억을 내 딸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마이엔펠트역에 도착하니 기차가 방금 떠나버려 한시간을 기다리면서 상념에 젖는다. 스위스인들은 우리보다 편리하게 생활하지 못한다. 좁은 집과 틀에 박힌 형태로 그들의 국토의 한부분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결코 세계 제일을 원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잃은 소박한 꿈이며 우리가 찾아야 할 이상이다. 있는 자와 없는자, 배운자 와 못배운자등 극한으로만 이해되는 우리로서는 스위스의 오랜 전통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손해를 보고 산다는 양보정신만 살아 있어도 세상은 함께 살기 휠씬 좋아 질 터인데... “오! 할아버지 ,이제는 모든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것 보다 더 즐거워요” 라고 말한 하이디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 하이디 마을을 보고 가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볼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슈피이리는 그렇게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의 아들과 남편을 여윈후 이 동화를 적을수 있는 것은 적어도 숭고한 신앙심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테니까 말이다. 청평가는 그 아름다운 북한강 길이나 남한강, 임진강가에 수없이 나열되어 있는 카페와 러브호텔, 그리고 논 한가운데 턱 버텨있는 아파트 , 파헤쳐 놓은 산등성이에서 오는 깊은 절망감을 요한나 슈피이리의 소설을 통해 작은, 아주 작은 희망을 본다. 120여년 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모습을 이곳 마이엔펠트에서 지금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큰 위안이며 기쁨이다. 小窓아사달 차문성 ( cha@sochang.net socha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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