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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년 前에로의 回歸 (거석문화의 原點! 스톤헨지)
 
 
 
오천년 前에로의 回歸 (거석문화의 原點! 스톤헨지)
 

스톤헨지를 가기 위해 런던의 워털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비가 심하게 오기에 잠시 피카디리 역에서 우산을 사려 했으나 시간에 쫓겨 구하지 못하고 일행들과 헤어져 곧장 워털루 역으로 갔다.

워털루 역에는 탑승객들로 붐볐다.
머리에 공작털을 꽂은 여인, 금방 결혼식을 마친 듯한 남녀, 역에서 볼 수 있는 짙은 화장을 하고 요란한 옷을 입은 여자...대학생들의 졸업여행 차림을 한 일행들, 연미복을 입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어디서곤 끽연을 즐기는 영국인들...나름대로의 전통을 생활에 투영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잠시 후, 창구에서 솔즈베리(SOLISBURY)로 향하는 왕복권을 구매하고 기차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솔즈베리 行은 승객이 별로 없어 역내와는 달리 조용한 분위기였다.
솔즈베리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간에 전날의 피로함을 잠시 잠에 의존하면서 시간속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깨어보니 기차는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11시35분에 기차를 타서 정확히 오후 1시2분에 솔즈베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비를 피하느라 종종걸음으로 안내소에 이르러 버스 배차시간을 물었다.
버스는 10여분 후에 출발한다고 한다.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배차를 한 것 같아 무척 편한 여행길이 예상되었다. 솔즈베리에는 많은 문화유적및 예술적인 행사가 열리는 문화도시지만그중에서 대성당은 120M에 이르는 영국에서 가장 큰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는 스톤헨지에 미치지 못한다.

1층에는 주민들,2층에는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는 정확히 시간을 맞춰 출발을 했다. 잔디가 없는 땅을 볼 수 없는 이곳은 빗길에 흙탕물 하나 튀지 않아 우리네 시골 빗길처럼 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조용히 잔디가비를 받치는 잔잔함이 흐른다.
스톤헨지에 가는 길은 좀 지대가 높은 듯 누런 밀밭이 펼쳐져 초록과 황색빛이 대조를 이룬다.

정확히 30분이 되었을 시간에 멀리 지평선 끝에 시립해 있는 신기루를 보았다.
스톤헨지였다.
거대한 고인돌의 집합지처럼 보이는 이곳은 검은 구름이 커텐처럼 뒤를 드리우고 그 앞을 배우들이 야외무대에서 실연하듯이 각양각색의 포즈를 잡고 있다. 성경속의 한 장면인 소돔城처럼 저주받은 인간들이 정지된 시간속의 고통을 받는 것처럼 멈춰버린 수십기의 거대한 돌들이 인간의 미련을 보란 듯 비웃고 있는 것 같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영국의 날씨가 변덕이 심하긴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 씩 일기예보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변화는 외부인에게는 날씨 적응을 여간 어렵게 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예상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입구에 들어가서 할 수 없이 비가 좀 멎을 때까지 상점에서 거석문화가 가져다준 관광상품의 모양을 살피기도 하고 사진을 보기도 하였다. 비가 아까보다는 적어진 듯해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 속에는 자동안내문이 내장된 핸드셋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내부에는 벽화를 그려두어 당시 생활상과 거석문화의 조성에 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윽고 터널을 올라오니 넓은 평야에 수많은 돌들이 촘촘히 놓여져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파릇한 잔디위에 희꺼무리한 거대한 돌들이 시꺼먼 구름까지의 징검다리처럼 둥글게 이어져 과거의 力事가 어떠했음을 말해준다.
관광객들은 숨을 죽이고 긴 행렬을 이뤄 원시인들이 성스러운 의식을 치루 듯이 엄숙하고 정적인 분위기로 장막이 드리워진 구름아래 거석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 탑돌이 순간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정신없이 돌았다.
두 번 째부터는 꼼꼼히 나침반으로 위치를 확인하면서 지도에 표시를 하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는데 다섯 번 정도 이 거석 주위를 뭔가에 홀린 것 처럼 종교적 신비로움에 감싸여 回期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사진과 메모를 마치고 입구를 나와서 스톤헨지라는 이름을 붙인 빵과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외부에 있는 두개의 돌들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스톤헨지를 구성한 두가지의 돌인 사센과 블루스톤이란 돌의 원석이다.
관광객들은 손으로 만지면서 이 돌들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이는 스톤헨지의 훼손을 막기위해 펜스를 둘러놓았는데 이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외부는 차가운 돌인 사센으로 내부는 따뜻한 돌인 블루스톤(혹 바뀌었는지도 모르지만)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안내와 함께 명시된 글은 "고고학의 발전으로 스톤헨지 조성의 인과를 이만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력에 맡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스톤헨지 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스톤헨지 건설은 3단계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스톤헨지는 지금부터 약 5천년 전에 흙으로 쌍아올린 형태였으리라 추정한다고 한다. 일종의 의식을 치르기 위한 장소로서 이용되었을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나무로 제작을 했고 (4900~4600년 전: WOODHENGE) 최종 단계에서는 웨일즈 지방에서 BLUESTONE라는 돌을 이용해 선돌 형식으로 돌을 곧게 세웠으며, 곧 말보로 타운이라는 지역에서 SARSEN 이라는 거대한 돌을 이동시켜 오늘의 거석문화를 조성했다 추정한다.
그 기간은 지금부터 약 4500년에서 4000년경에 이른다.
(블루스톤과 사센은 일종의 SANDSTONE 계통인데 색깔로서 구별된다.)

따라서 스톤헨지의 조성기간은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밋의 건축과 비슷한 시기인데 당시에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경이로운 거석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이룩된다.
이 놀라운 거석문화의 주요 부분은 높이 10M에 이르는 사센이라는 외부를 둘러싼 돌들과 블루스톤이라는 그 반 정도의 크기에 해당하는 내부의 돌들로 이루어진다.
즉, 사센 돌들로 이뤄진 부분을 사센 CIRCLE라 하는데 이 직경이 약 30M에 달하고 7톤에 달하는 30개의 개석이 고인돌처럼 석주 위에 올려져 있다. 지금은 1/4 정도만 그 모습을 보이지만...

중앙부를 정확히 가로지르는 일련의 고인돌의 모양을 따서 사센 TRILITHON이라 하며 그 형태는 탁자식 고인돌을 연상하면 쉽게 연상할 수 있다..곧게 세워진 이 돌은 세 개의 돌로 이뤄지며 약 45톤 정도 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거대한 돌들이 목조에서 흔히 쓰이는 이음과 맞춤을 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석에 해당하는 인방부의 돌들이 서로 맞물리게 되어 있으며, 아래 위로는 홈이 파져 긴 석주를 상단 인방부에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이러한 거석문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것은 많은 학설이 난무하지만 여러 가지 가설로만 남아있다.
거석의 중앙부에서 보면 하지에서의 태양의 일출을 정확히 볼 수가 있고, 천문의 변화를 정확히 관찰할 수 있다 한다. 더구나 이 스톤헨지에서는 일출과 일몰때 그 수평선상의 남북을 직각으로 나누는 경도로도 표시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다. 따라서 달과 해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만들었다 한다.

그렇다면 이 스톤헨지는 현존하는 최초의 천문 관측소의 역할을 한 셈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이유가 가설로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문화는 과학에 앞서 상징성이 강한 것은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과학을 신봉한 나머지 상징성을 간과한다면 그 또한 큰 오류가 될 수 있다.
천문관측적인 것은 외형상의 모양에서 인정이 되지만 고고학적인 근거는 빈약하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곳에서 3KM 떨어진 곳에 WOODHENGE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다. 나무를 세운 홈을 기준으로 바깥에서 둥글게 삼단으로 기둥을 세워 천정부에 이엉을 올려 지붕으로 이용했다는 설명이 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잠실구장과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나무와 돌들로 이뤄진 원시 거석문화...돌 사이에 작은 성혈들이 보인다.
구석기시대에 유행한 대모신이라는 신상은 단도로 긁은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새끼 밴 소를 그리면 그 말이 새끼를 밴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는 것과 뭔가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 그림의 흔적은 스톤헨지에 대한 수많은 억측과는 달리 한 인간의 소박한 바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돌들과의 시간여행하는 동안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가져온 공허함과 인간의 능력의 무한함이 가져오는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현재 남아 있는 60여개의 돌들은 당시 건설된 돌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BC 1600년을 전후한 파괴와 자연적인 폐해로 말미암아 인간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진 이 역사 이전의 일들은 아직도 인간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인간은 때로는 그 실수를 문명, 문화, 역사라는 명분 하에 불가사이라는 이름으로 과장하지만 스톤헨지는 여전히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스톤헨지!
하나의 돌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집단 돌들의 절묘한 배치.
HEEL STONE, ENTRANCE STONE, HORSESHOE, ALTAR, STATION STONE....
건축과 고고학의 절묘한 조화로 4500년 전의 신비를 벗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세계 어디에고 비교의 대상이 없는 돌

스톤헨지 TOUR는 짧은 순간이지만 시간속의 긴 여행이었다.
그것은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한 회기의 본능을 발산하기 위한 탓일까.
버스에 올라타서 낯선 길을 지나가는 동안 빗길에 또 다른 스톤헨지의 虛像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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