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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간의 이집트여행
1) 피라밋일주
2) 죽음의 땅 네크로폴리스 룩소르 여행
3) 세상의 여명, 알렉산드리아
 
 
 

제1일 피라밋 TOUR 이집트3일 만에 따라잡기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다. 나일강의 흐름이 이집트의 역사를 만들었고 그 풍요로움 위에 거대한 墳墓를 건설했다. 古代에 이집트를 점령한 마케도니아인도 로마인도 이 피라밋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오스만투르크나 프랑스, 대영제국도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무덤군을 보고 경이감을 표했던 것이다. 나일강을 따라 도시가 건설되었고 그 길 옆에는 언제나 사막이 놓여 있었다. 나일강은 한쪽은 초원의 땅이고 건너편 사막은 죽음의 땅 바로 네크로폴리스였다.
이번에 네크로폴리스를 따라 건설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찾아 나섰다.
샤카라 - 멤피스(도시) - 다슈르- 메이둠 - 페이윰 - 아부시르 -기자
의 6곳의 피라밋과 한곳의 고대 도시를 찾아 나섰다.
출발지는 나일강 앞에 면해 있는 "나일 힐턴 호텔"... 역시 호텔에서의 댓가는 값비쌌다. 왕복 미화 60$. 이곳에서는 상당히 큰 액수지만 나일강을 따라 건설된 모든 피라밋을 본다는 흥분감으로 잠시 흥정을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출발하면서 다리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나일델타를 바라보았다.
나일강은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흐른다.그 길이가 1200㎞나 된다지만 우리의 우기와는 달이 요란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6월에서 9월에는 나일강이 범람을 하게 되어 10월이후 기름진 땅을 만들어 준다. 나일강을 여행하면서 한가지 놀라운 것은 경작지마다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뭏든 이 범람으로 비옥한 농지가 형성되는데 이를 나일델타라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스완에서 멤피스(카이로에서 멀지 않음)까지를 上이집트, 멤피스에서 지중해까지의 델타지역을 下이집트라 불렀다. 진정한 파라오는 이 兩大지역을 지배한 자였다.

최초의 피라밋을 찾아
먼저 지금부터 5000년전에 건설된 샤카라의 피라밋을 찾아 나섰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3왕조의 제세르왕의 피라밋이다. 계단식으로 조성했기에 계단식 피라밋이라고도 한다.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면 작은 수로를 따라 난 길을 달리는 데 이집트인들의 중요한 이동수단인 나귀를 많이 보게 된다. 첫날 이곳에 갈때는 모래바람 때문에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다음날 또 가게 되었지만... 아무튼 20EP를 지불하고 황량한 모래언덕을 올라서면 이미 무너져 내려 석재가 노출된 피라밋을 먼저 만나게 된다. 멀리 제세르왕의 스텝 피라밋이 보이고 그 앞에 장제전이 놓여있다. 1821년 프러시아 장군 미누톨리에 의해 발견된 이래 수많은 탐험가와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1924년 장제전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리스의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파라오의 건축물이란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장제전에는 지금도 몇 십개의 돌기둥이 놓여 있고 장제전이 끝나는 곳에 벽으로 둘러싸인 제세르의 피라밋을 만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스텝피라밋을 무척 좋아한다. 기자의 무모할 정도의 겨대한 삼각피라밋보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아니 장군총이나 호태왕릉같은 모습이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잠시 이곳에서 상념에 잠긴다. 최초의 피라밋이라 불리는 이곳의 조성 목적은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신과 같은 인간의 권위,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한 염원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거대함에 말을 잊는다.


제세르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피라밋은 재상 임호테프의 작품이다. 갑작스런 건축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임호테프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귀화인이란 설도 있지만 그가 건축과 水利능력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음은 틀림없다.(사실 메소포타미아에도 이같은 계단식 피라밋이 있다) 그로인해 피라밋의 시대는 막을 열었다.


 


샤카라 남쪽 7㎞ 지점에 있는 다슈르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개의 피라밋을 지나

는 동안에도 사막의 바람은 멈추지 않고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바람이 없는 날 샤카라의 장제전에서 보이는 것이 다슈르 피라밋군이다. 이집트의 사막지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어서 어디서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다슈르 역시 군사지역이지만 1996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서양인들은 간혹 보이지만 동양인들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다슈르 피라밋은 5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 데 이를 소위 “굴절피라밋”이라고 한다. 이 굴절피라밋의 제작자는 스네푸르 王로 알려지고 있다. 스네푸루는 나중에 나오는 메이둠의 피라밋을 지은 후 다슈르의 피라밋을 만든 그야말로 피라밋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자다. 다슈르 피라밋은 밑면의 길이 184M 높이105M인 거대한 피라밋군이다. 다슈르의 탄생은 메이둠의 異形 피라밋이 윗면이 무너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슈르의 굴절피라밋은 윗부분은 완만하게 아랫부분은 경사지게 했다는 데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아무튼 기술의 시행착오에서 비롯된 것 일게다.

[멤피스]
우리는 제일 남쪽 피라밋군인 메이둠과 페이윰으로 가기 전 다슈르 분묘군 근처에 있는 멤피스로 향했다. 멤피스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이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작은 시골마을이 전부이다. 이집트식 선물가게 바자르 맞은 편에 자그마한 자료관이 있다. 서양인과 일부의 일본인 뿐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작았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내에 누워있는 람세스 2세가 있다. 건축왕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십미터에 이르는 람세스Ⅱ세는 적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왕중왕이라 불리운 근엄한 그의 모습에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신으로 추앙 되어 지고픈 그의 욕망이 서려 있다.
그는 기원전 1290년에서 1224년까지 66년간 上下이집트를 다스렸고 히타이트로부터 이집트를 지켜낸 왕이다. 건축왕이라 할만큼 그 자신을 나타내길 좋아한 그의 조각상은 이집트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다슈르에서 나가는 길에 수많은 분묘들의 위치에 표식을 해 두었다. 사막을 용기있게 걸어가는 한 여성을 태웠다. 그녀는 일본인으로 니이가타 국립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유코라는 대학 1학년 학생이었다. 나와 후배는 무료했던 차에 그녀와 국경을 초월한 피라밋 사랑으로 메이둠까지 1시간 30분동안 즐거운 담론을 가졌다. 택시운전사는 웃돈을 받을 생각에 유코양을 태웠지만 우리가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해 나중에는 울상이다.

메이둠은 사막속에서 하나의 환영과 같았다. 마치 커다란 돌기둥의 모습이다. 피라밋 왕이라는 스네프루의 작품이지만 양쪽이 떨어져나간 형상이다. 실제 가까이 가보면 무너져 버린 돌무더기가 주변에 흩어져 있다. 아무튼 메이둠의 異形피라밋은 실패로 끝나고 아슈르의 피라밋으로 이어진 것을 느끼면서 어느새 이집트왕들 과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었다,

좌측에 보이는 작은 구멍을 따라 왕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한참을 따라 내려 갔다. 이곳 메이둠에는 군인들과 우리 4명만이 전부였다. 지하는 생각보다 더웠다. 기자 피라밋은 워낙 유명해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은 외지이므로 상황이 열악했다. 내부는 기자와 아슈르등과 흡사했다. 단지 내부가 조금 좁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연도를 따라 들어가 다시 2층으로 올라 현실로 들어가 높다란 천장을 보는 순간 5천년 전 인간의 상상 속에 들어왔다는 감동이 밀려 왔다.

[아부시르 1-15]
우리는 이집트 북쪽에 있는 아부시르 피라밋군으로 올라갔다. 이미 해는 시나브로 지고 있

고 아부시르를 들어가는 입구는 이미 통제되고 있었다. 멀리서 아부시르 피라밋군의 모습만을 잡았다. 다행히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아부시르의 모습은 서쪽으로 지는 해와 함께 뚜렷이 보였다. 우리는 차를 돌려 피라밋의 代名詞 기자로 행했다. 기자는 낙타를 타고 야간에 피라밋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와 [기자피라밋]
드디어 기자 피라밋에 왔다. 기자피라밋은 카이로에서 불과 1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샤카라의 스텝피라밋과 장제전을 지나 아슈르로 가서 멀리 메이둠, 페이윰을 지나 아부시르로 가서 다시 카이로로 돌아와 기자에 도착했다.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이제는 저녁 6시가 지났다. 거대한 3기의 피라밋은 현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여전히 위용을 자랑한다.

나는 몇해 전 처음 기자 피라밋을 볼때는 그 규모뿐 아니라 과학적인 건축기법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러한 편견 없이 보니까 담담해 진다. 높이 150여미터의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왕 3명의 왕들의 무덤이다. 이 거대한 삼각형의 무덤은 내부가 돌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노동자가 이처럼 거대한 왕의 무덤을 만들면서 죽어갔을까 ? 그렇다면 피라밋은 비인간적인 건축물의 대명사일것이다.
헤로도투스의 HISTORY에는 “10만명의 사람이 동원되어 목재를 운반하면서 노예처럼 죽어 갔다”고 묘사하고 있지만 발견된 자료를 보면 쿠푸왕을 칭송하는 글 일색이다. 그렇다면 왕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수긍이 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왕을 위해 기꺼이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대한 피라밋을 건설하기 위한 과학적인 설계와 건축술의 발전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나일강의 수리시설과 연계되었고 관개시설의 확충 그리고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라밋의 건설은 왕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다분히 실험적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다.

 

공명정대한 파라오로 알려진 멘카우라의 피라밋을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카메라의 소지가 불가하다. 내부는 아슈르와 메이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부가 훨씬 넓어 지하로 내려가기기 수월하다. 수많은 외국인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이나 노인들이나 모두들 진지하긴 마찬가지다. 우리의 문화를 보는 진지함도 이들 같았으면 좋으련만... 지하로 내려가면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마치 우진각지붕처럼 천장을 구성한다. 우리는 바로 현실의 천장에 있는 것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1.5M정도의 높이를 가진 연도를 따라 내려가면 현실을 볼 수 있다. 현실은 텅 비어 있고 멘카우라왕의 석관은 확인해 보니 이집트박물관과 보스통에 보관중이라 한다..
스핑크스로 가기 위해서는 조금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헤로도투스의 이집트 여행기에는 스핑크스가 언급되어 있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는 피라밋 이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판단되기 도 한다. 아무튼 스핑크스는 태양신인 파라오를 상징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고왕국시대의 말기로 진행되면서 피라밋은 점점 더 작아진다. 재정의 고갈과 백성의 반란등으로 태양신의 권위는 추락했을 것이다. 이제 피라밋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서서히 테베(룩솔,)의 시대 즉 지하분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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