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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경내안내도 및 관련 글
박물관 및 전시물 소개
소개

1) http://www.yasukuni.or.jp/    야스쿠니신사 홈페이지
2) 첨부 사진 : 야스쿠니 신사 경내 지도
3) 관련 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所懷

                                                                                  小窓 차문성

도쿄도 날이 풀렸다지만 3월의 찬 바람이 아직도 세차다. 오늘은 현해탄(미야우치)님과 만나 도쿄국립박물관의 ‘박물관학’ 특별전에 가려 했었는데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이란다.
벌써 6-7년 전에 일본 내의 조선통신사 답사를 추진하면서 마지막 코스로 에도성에 간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인근에 한일 역사왜곡의 현장이라는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공항에서 우에노역까지 약 1시간 걸려 스카이라이너 개찰구를 통과하니 현해탄님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사쿠라가 꽃망울을 맺고 있는 우에노 공원 앞에서 택시를 타니 야스쿠니신사까지는 10분 거리 1900엔이 나온다.

신사사무소 앞에 내리니 커다란 제 2호 도리가 정면을 막아서고 있다. 우측 입구 쪽에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추앙되는 오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이 제 1호 도리와 함께 보인다. 신사의 神門을 통과하기 전 현해탄님과 나는 야스쿠니신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래 야스쿠니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일본에는 약 8만개의 신사가 있다고 한다. 이 신사들을 관리하는 곳이 신사본청(www.jinjahoncho.or.jp) 인데 홈페이지에는 천황가의 소식, 유래 그리고 일본의 신들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그림1: 현해탄님과 함께 ,제 2도리 앞에서)
일본에 있는 3대 신사는 도쿄에 있는 메이지신궁, 미에현에 있는 이세신궁, 오이타 현 인근의 우사신궁인데 신궁이란 일본의 天皇家와 관련되어 있는 곳으로 일반 신사와는 격이 다르다.
이 야스쿠니 신사는 그 이름이 신궁은 아니지만 1869년 招魂社로 창설되어 10년 뒤 야스쿠니신사로 개칭하여 그 창설과 유래에 관해 한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우리에게는 금기로 다가서는 곳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막부의 패망시기인 무진전쟁 기 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일본국가와 천황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소위 신으로 추앙하는 전몰자 추도시설이기에 일본의 군국주의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이러한 역사의 연결고리로 인해 일본이 2차 대전에 패망한 후 연합군총사령부는 정교분리를 명시한 신헌법의 제정으로 전몰자 추도시설과 단순 종교시설중 하나를 택하게 해 종교시설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전몰자 추도시설을 완전 박탈하지는 못했다.
이로인해 종교법인으로 탈바꿈하게 되지만 그 본질적인 모습이 오늘날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국가 관리의 신사로 두자는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된 것에서 알 수 있다.
깊은 자기성찰과 반성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죽은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며 맹목적인 역사를 강요하는 현장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인간권리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성숙한 사회로 보기는 어렵다.

도리를 통과하니 양쪽 끝에 용마루 끝에 천목이 달린 삼문으로 된 神門을 통과하게 된다. 신문 앞에 小도리가 있고 우측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전쟁기념관 격인 류슈칸을 가리고 있었다.
현해탄님은 “이 나무들은 모두 종무회 소속 노인들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야스쿠니 신사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 진 것인 만큼 이 나무들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메이지 신궁에도 일본 전역의 나무들과 각 식민지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 선 것 처럼 이 곳의 나무들도 신사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2 류슈관)
박물관역사를 연구하는 학도로써 류슈칸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로 명치 15년(1893)년에 설립된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쟁기념관이란 것이고 (최초의 일본 박물관은 우에노공원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당시의 도쿄제실박물관임)
둘째로 천황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의 합사명부와 어신제를 행하는 곳이며 ,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북관대첩비를 이곳 후정에 방치하고 얼마 전 반환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진전쟁 시기의 막부 편과 서남전쟁때의 정부군에 대항한 반군은 죽은 후 매장을 못하게 했습니다, 모두 짐승과 새들의 밥이 되었지요. 잔혹한 죽음을 통해 천황군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라 현해탄님의 말속에서 군국주의적 위정자의 통치철학을 엿 볼 수 있다.

약 10만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류슈칸은 4년 전 중심본관에서 건물 兩翼을 확장한 것이라 하는데 르네상스식 과 일본식의 외양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시실의 주제는 무척 단순하지만 일관적으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나 주제의 반복을 통해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려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인의 마음’이란 제1전시실에서는 고대-중세-근세의 일본 무인의 대도와 갑옷으로 가볍게 일본의 마음은 무엇일까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두 번 째 전시실에서는 소위 명치유신과 외세의 위협이란 테마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본격적인 과거사의 합리화를 표현한다.
페리제독의 미일수교조약과 막부의 멸망 그리고 명치천황의 출현에 대한 당위성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아시아를 제국주의에서 해방시킨다는 군국주의적 사고, 예술적 사고, 철학적, 도덕적 사고를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다음으로 “국방강화-무진전쟁-서남전쟁-야스쿠니신사의 창사-황실의 어숭경-명치천황-대정천황-소화천황등의 나열,반복적 전시-청일전쟁-러일전쟁-1차세계대전-만주사변-초혼제정-지나사변-대동아전쟁-야스쿠니의 신들-대전시실”  총 20개 전시실로 끝을 맺는다.

가장 인상적인 전시실은 한국의 강점시기 이토히로부미가 조선의 안중근에 암살된다는 것과 조선총독부 건물의 대비적인 모습에서 이중적 암시를 나타내는 것과 야스쿠니 신사의 초혼제다.
초혼제는 가마에 합사명부를 봉안하고 행행을 하면서 본전에 안치하는 행사다. 죽어서 야스쿠니의 신이 된다면, 그 사람이 살아서 어떤 인간이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합사에는 약 250만 명의 명부가 들어 있는데 이에는 2차대전의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하여 조선인 20,000여명 대만인 8,000여명의 명부도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 식민 시기에 조선인과 대만인은 일본천황의 이름으로 죽었다는 논리로 합사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나는 초혼제에서 받은 이상한 집단주의적 샤머니즘을 마지막 전시실인 ‘야스쿠니의 신들’에서는 충격스러울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약 3,000여명의 망자의 사진들이 코너별로 나열되어 있고 그중에는 학생, 군인, 민간인을 비롯해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1월에 그의 손녀 도죠유코는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을 지난 분이셨다. 외국의 침략자들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지킨 것이다. 그 분이 저지른 죄라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다” 라며 전범이 아닌 훌륭한 사무라이임을 주장하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한 사람이라면 그에 걸 맞는 노력을 과정과 결과에서 찾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징병, 징용, 위안부, 학살, 인체 실험 등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을 조국,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일까.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의 집단주의적 사고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황의 이름으로 허망하게 죽어 간 가미가제는 聖戰으로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했다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이를 강하게 거부하려했던 것이 여러 자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자살이란 한낱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사회 집단주의적 병폐에서 기인했을 뿐이다.         (그림3: 초혼제정과 합사명부)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악의 해석의 차이는 일본의 천황중심의 근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의 국가의 형성과 야스쿠니 신사는 살아서의 국가관과 사후 세계의 보장이라는 상호보완적인 윤리적 가치관을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의 위패 봉안만이 아닌 전쟁의 합리화란 명분을 가진 신사로써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림4: 망자의 사진)

나는 현해탄님과 류슈칸을 걸어나오면서 도리 앞 가게에서 100엔짜리 부적을 걸어 한 해의 부정을 막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젊은이와 야스쿠니 오카시(과자)를 파는 가게에서 여늬 신사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
이처럼 야스쿠니가 보통의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 아니 정말 특별한 신사로 일본 국민과 세계인으로 부터 존경받는 신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류슈칸과 같은 전쟁기념관이 합리화란 가면을 벗어 던지고 철저한 자기반성의 기초위에 다양한 시각의 역사박물관의 구성과 교육현장으로 거듭 나는 날, 한일관계가 더욱 굳건한 믿음위에 기초한다는 생각에 서로는 깊은 공감을 가졌다.

06.03.09  현해탄님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서, 小窓아사달 차문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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