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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2-01 11:47:12, Hit : 5273, Vote :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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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아침(元旦)에 거는 믿음

                      ■새해 아침(元旦)에 거는 믿음■                                                                                                 小窓 차문성

새해 아침을 "元旦"이라고들 한다.
즉 "으뜸 이른 아침"을 이르는 말이다.
새해 아침에는 거리를 나서는 사람들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는 말을 건네는 것은 우리 덕담중 대표적인 말이다.
우리에게 설은 무엇일까.
元旦과 설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의 설도 민중의 역사만큼 힘든 과정을 겪었다. 흔히들 한국인에게는 두 개의 설날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우리의 설을 빼앗겨 소위 "일본설"이라 불리운 "양력 1월 1일"을 설이라 부르고 살아 왔던 과거가 있었다.
해방 후 공휴일로 지정된 양력설 정책으로 관공서 및 기업들의 휴무가 맞추어 지다 보니 지방에서나 겨우 설날은 구정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왔다. 

<우측:단발령 반대및 통지문>

암울한 일제하에서 우리의 설을 빼앗기고 해방 후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설은 억압되었고 1989년에 이르러서야 "민속의 날"이란 어줍잖은 이름으로 우리의 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마침내 "설날"로 바뀐 것은 민중운동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음이다.

1895년 고종 32년 김홍집 내각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역법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단발령을 시행할 것을 명한다.
1896년 양력 1월 1일을 기해 曆法을 건양이란 연호와 태양력을 사용케 하고 백성들에게 상투를 자를 것을 명하지만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매천야록을 살펴보면 『유길준이 앞장서서 "머리를 깍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 하몄으며 "삭발령이 내려지자 곡성이 하늘을 진동했으며 분하고 노해서 백성들이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한다. 비단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목숨을 끊을 정도의 우민한 백성들일까. 당시 단발령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身體髮膚 受之父母"란 말을 자주 인용해 마치 조선사람들은 신체의 털을 목숨같이 여겼다고 생각한다면 과장된 이야기다.
사자소학의 孝行편을 보면,
『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不敢毁傷  孝之始也 감히 훼상치 아니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立身行道  揚名後世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서    以顯父母  孝之終也 부모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

몸을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효의 끝이라 생각한 것은 효의 구체적인 실현 방법인 것이다. 조선사람의 인식이 편협하고 고루해서 머리털 깍는것을 목숨처럼 여겼다는 말은 효행편을 읽어 본 사람이면 쉽게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여간 많은 조선사람들이 단발령으로 죽었다.
단순히 머리털을 깍아 죽은 것이 아니라 분해서 죽었다.
그렇다, 억울해서 죽은 것이다. 서러워서 죽은 것이다.
매천야록에서 계속 말한다.

『사람들은 머리를 깍이게 되면 그 상투를 주머니에 넣어 통곡하지 않는 자 없었으며 오직 아낙네와 어린이만 깍이지 않았다』 한다.
대구의 극단예전에서 "단발령"이란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다.
단발을 한 군수가 마을 사람들에 쫓겨나 대립하면서 주인공이 의병이 되는 이야기다. 실제 대구 안동지역은 다른 어느곳보다 반발이 심해 머리깍은 수령들이 살해된 적도 있었다 한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08년 前 1896년 1월 1일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자연히 양력을 쓰고 머리도 단정히 깍는 게 유행이다. 이를 두고 역사와 문화를 망각한 행동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태음력을 중심으로 한 태양력도 함께 사용해 왔다. 태양이 황도상에 위치에 따라서 계절이 변하는데 15도 간격으로 24로 구분하여 이를 24절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특히나 "동짓날"은 태양의 힘이 가장 작아지는 날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짓날의 팥죽에 새알을 넣어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이다.
우리의 설은 작은 설이라는 동짓날을 기준으로 해서 음력 1월 1일 (양력 2월 1일)을 지나 정월 대보름까지를 말하고 있다. 해서 한국인에게 두 개의 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서양사람들이 전년 12월과 다음 해 1월 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즐기고 소아시아지방의 聖니콜라스란 이름에서 산타클로스가 채용한 것도 문화의 전이현상이다. 문화에는 도전과 응전이 항상 있어 왔다. 약탈자가 피해국의 문화에 동화되는 경우가 흔히 있어 왔고 이는 새로운 문화 창안의 바탕이 되어 왔다.
고려때 고려양과 몽고풍의 잔재가 오래 지속된 것이나 조선에서 전해진 일본의 오도리춤이나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하루방도 혼재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의 설날도 동지에서 신년을 거쳐 설날에 이르는 동안 元旦으로 자연히 정착하게 된 것은 도전과 응전에서 이루어진 문화의 産物이다. 도전과 응전에서 이긴다고 해서 우리 것만을 채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21C 는 인터넷이다 휴대폰이다 하여 아날로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의 혼재가 있다.

이 癸未年은 힘의 논리에 의한 약자의 평정 ,핵의 논리, 있는자와 없는자의 괴리 ,믿음과 불신의 폭이 커져 우리에게 혼돈을 예고한다. 그러나 인내와 끈기로 이겨 낸 우리 민족의 英斷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60년간 끊으면 이어지고 버리면 되찾은 설날처럼 새해에는 독도의 경계를 넘어 만주의 영광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고구려인이 끌던 지혜의 수레를 권위의 상징인 외발수레로 만들어 수레의 편리함을 훼손한 조선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기필코 三足烏의 太陽을 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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