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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24 16:12:29, Hit : 6693, Vote : 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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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관대첩비를 통해 본 해외문화재의 현주소

 

             북관대첩비를 통해 본 해외 문화재의 현주소


                                                          小窓 아사달, 차문성 cha@sochang.net


이라크 전쟁때 박물관에서 유물의 상당수가 약탈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언론들은 이 날을 “이라크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고 애도하였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적 흔적이 사라지는 것과 미친가지 사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한사람의 역사 , 한 나라의 역사 ,나아가 한 문명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에 원위치에 소장되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나타내 준다.

얼마 전 유홍준 청장께서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한 남북 문화재회담 제의를 한 바 있는 碑는 1709년 숙종 대에 함경도 지방의 의병인 정문부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이다. 가첨석이 있는 비신의 높이 187㎝, 넓이 66㎝, 두께가 13㎝이고 비의 전후면에 행서의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함경도에 진주한 17여단장 池田正介소장이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 임명역에서 북관대첩비를 발견해 1905년 10월 히로시마로 가져가 이듬해 5월에 도쿄로 이송했다. 이송 후 청일전쟁 전리품 기념관인 진천부에 진열되었다가 후에 야스쿠니 신사내의 전쟁 유품과 전리품을 보관하는 박물관인 游就館 앞으로 이건 되었다.

이건의 경위는 「일본이 러시아와 조선독립을 위해 전쟁을 하는데 일본에 대한 이런 기념비가 남아 있다면 조선과의 친목에 방해가 된다며 이 비를 철거해 달라했더니 순순히 동의해 철거 및 양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정황으로 보아 순순히 동의했다는 것은 사실을 철저히 왜곡시키고 있으며 강제 철거 후 전리품과 함께 진열했다는 것은 그 강제 철거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보도 자료를 보면 1978년 재일사학자 최서면 씨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내에 소재가 확인된 이 비는 민관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환을 모색하여 왔다고 하는데 근래 일본의 보수신문에서는 반일선전에 이용될 뿐이므로 반환에 대한 재고를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상 해외유출문화재는 북관대첩비를 비롯해 일제 강점 하에서 석조, 건축, 조각, 회화등 다방면의 한국문화재가 제도적 정책적으로 일제의 관학자 들에 의해 고적조사의 명목으로 유출되어 갔다. 경복궁에 있는 많은 탑과 부도들은 1915년 <조선 물산 공진회>의 개최와 더불어 제자리를 잃은 문화재들이며 미증유의 불법거래를 통해 일본에 수많은 문화재가 유출되었다. 현재 파악된 해외유출문화재는 약 7만5천점에 이르는데 여기에 일본이 3만 5천점으로 가장 많다. 왜 일본에 있는 유출문화재의 반환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65년에 한일기본조약이 성립될 때 “한일간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성립된다. 이 협정은 4개 조항으로 구성되었으며 합의 의사록을 포함하고 있다. 2조를 보면 “일본국 정부는 부속서에 열거한 문화재를 양국 정부간에 합의되는 절차에 따라 본 협정 발생 후 6개월 이내에 대한민국 정부에 인도 한다”라 규정한다. 협정 2조에 의해 우리 측이 일본에 반환을 요구한 품목은 조선총독부 반출 고분 출토품 689점, 조선통감 및 총독 반출품 1,371점 , 일본 국유의 분묘 출토품 및 체신 문화재 758점, 일본 지정문화재중 오쿠라 개인소유 80점, 기타 1,581점 등 4,479점이었으나 실제 반환받은 품목은 고고미술품 554점 전적 852점 ,체신 36점등 1,432점에 불과하다. 이러한 차이는 반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우리와 인도라는 개념으로 일관하는 일본과의 견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합의 의사록에는 “일본 국민의 사유로써 한국에 연유하는 문화재가 한국 측에 기증되도록 희망하며 일본정부는 이를 권장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의하면 일본정부는 과연 적극적인 문화재 인도를 권장을 했는지 의문이 간다.

당시 일본이 제시한 문화재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문화재의 반환도 지속적으로 당국간 협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일문화교류차원에서 문화재 반환청구가 성사되지 못했으나 ‘영친왕비에 유래한 복식 등의 양도에 관한 협정’으로 영친왕가의 복식유물 152점이 기증형식으로 반환된 사례는 본보기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불법적 반출행위에 대한 반성이 선행하지 않는데 있으며 합의의사록 내용에 따른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권장이 없는 것에 기인한다고 보겠다. 

유출문화재는 일제 강점기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1866년 10월 16일 병인양요가 일어나 강화 외규장각에 비치된 의궤도서 340, 지도 1점, 천문도 족자 갑옷등이 프랑스에 불법 유출된 사실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희경원 원소도감 의궤’ 1권을 반환받긴 했지만 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또한 신미양요때 미군에 의해 약탈된 커다란 황포 깃발인 "帥“기 와 대포는 애니아폴리스 의 미해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50명의 조선군 전사자와 4명의 미군의 목숨을 앗아간 무모한 전쟁에서 약탈된 수기의 반환은 문화재 반환의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帥’기가 남아 있지 않고 다만 강화 역사관에 그 사본이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 반환의 나라간 선례는 벨기에와 자이레간의 협약과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이태리와 에치오피아등이 있고 국제적 협약은 Hague 협약, 1919년 1차대전 종전 후 베르사이유 협약, UNESCO 협약에 의해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에 관한 국제적 협약이 있다. 로스엔젤레스의 폴 게티 미술관에서 고대미술품을 이태리정부에 반환한 사례와 독일 기프호른 미술관에 전시한 요하네스 링겔바흐의 회하 ‘콘스탄티누스의 전투’를 이태리에 반환한 선례가 있다. 

따라서 1965년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의 전문에서 UN헌장의 원칙을 지침으로 긴밀히 협의하기로 한 점에 미뤄 UNESCO를 중심으로 전개된 국제적 협약에 부응토록 노력해야 한다. 국수적인 민족문화유산 개념만이 문화재반환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란 개념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 선생의 와전 1,082점의 기증과 하치우마 선생의 금동불상을 비롯한 383점 ,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의 기증은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가네코 소장의 기증 사유는 “과거 일본이 한국에게서 받은 문화적 혜택에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광복 60주년인 현재도 일제의 완전한 청산은 문화재 부문에서는 더더욱 요원하다. 지속적으로 유출문화재 경위조사와 교류전시가 활발히 이뤄져 정부 간 만이 아니라 민간부문에서 더욱 기증의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문화재 회담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한 북관대첩비의 반환은 자발적 문화재 반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본다.

- 차문성 -


*첨부 사진 :오마이뉴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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