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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0-22 10:44:06, Hit : 5996, Vote :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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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속에 우리 문화가 차지하는 위치! (청탁원고)

 

                  세계속에 우리 문화가 차지하는 위치

                                      小窓아사달 차문성 cha@sochang.net


우리얼이 이제 10년을 훌쩍 뛰어 넘었다. 문화와 인연을 맺은 적잖은 세월과 인연들이 스쳐 간 것이다. 이에 우리얼 칼럼니스트로써 성년의 우리얼을 축하하고 역사문화를 위한 시민단체로써 미래의 청사진을 구체화하기를 勸하며 졸고(拙稿)를 내놓는다.


조석으로 신문을 보면 세계 최대, 최고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의 건축, 공예, 회화, 조각을 통해 선진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입증하고 있을까. 출간된 책을 통해 보면 선비문화와 과학기술, 당쟁조차 미화되기도 하고 때론 과장되기도 하는 현실에 한국문화의 위대함은 공허한 허공에 지르는 함성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해외를 오가면서 우리 문화의 세계속의 위치는 어떨지 궁금해 왔는데 이 글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생각코자 한다.


예송론(例送論)에 빠진 조선의 성리학은 최악의 신분제도인 班常의 씨와 사농공상이란 비경제적 논리로 조선의 기운을 무기력하게 하고 경제파탄으로 결국 스스로 패망케 하고 소수의 천재에 의존한 과학기술은 그 시대에만 안주하여 고루한 재탕, 삼탕의 이용에 그쳤다.

수원화성의 건설과 관련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만든 거중기도 중국의 기기도설을 참고해 만들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이미 예수회 소속 요한테렌스가 1672년에 중국어판을 발행한 것으로 발간된 지 100년도 더 지난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 즈음 영국은 면직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은 급성장하고 19c초가 되면 사회간접자본시설을 확춯해 운하, 제련, 기관차를 생산력과 기술에

 

도1)청자상감진사채동자포도당초문주자,고려, 국립중앙박물관

일대 혁식을 이룩하는 시기다. 만약에 거중기를 한국 과학기술중 하나로 내세웠다면 당시 세계의 흐름을 외면한 일일 것이다.

그중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것이 있다. 

송나라의 태평노인은 「수중금(袖中錦)」에서 천하제일 10조 중 하나로 송나라의 청자를 제쳐두고 고려의 秘色청자를 꼽았다. 고려청자는 처음에는 중국 것을 모방하는 데 그쳤으나 가만히 비취색을 보고 있노라면 끝없이 깊고 차분한 느낌을 받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뿐 만아니라 器型에 있어서도 참외, 연꽃 , 주전자, 원숭이, 동자상 등의 다양한 형태를 구사하여 송나라의 청자를 능가하고 제작기술에도 상감을 이용한 청자제작에 성공한다.

이러한 우수함은 고려청자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라하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완, 호등을 실험적인 기형과 더불어 상감기법을 가미하여 창조적인 청자로 탄생되게 한 것이다. 이런 명성으로 점차 세계 유수의 박물관은 으레 고려청자 정도는 있어야 아시아 도자문화를 보여준다 하니 과히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는 고려청자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대장경과 고려불화 정도일 텐데 일본 增上寺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대장경 6531권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고려불화는 130여점이 잔존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일본에 있고 한국에는 고작 호암미술관에 있는 13점이 전부라 한다.

95년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고려대국보전에 전시된 고려불화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었는데 특히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크기가 4m가 넘는 대형 불화였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상당수가 임진왜란때 일본에 약탈당한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其實 이런 것을 보더라도 한국문화는 우리의 역사보다는 훨씬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그 결과로 동북아의 unique한 특수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세계박물관에서 중국과 일본에 어깨를 나란히 해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도2)<한국미술오천년> 포스트

필자의 책상에는 1979년에 발간된 《한국미술오천년전》 도록이 놓여있다.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무녕왕릉 금관식」「청동유물」「금관」「청자상감 진사채 포도당초문」을 비롯 국보급 256점이 해외에서 전시된 일이 있다. 암울한 유신체제에서의 군사독재 이미지를 예술한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최고의 명품을 싣고 일본, 미국, 유럽으로 1976년부터 85년까지 10년간 나들이를 하였다. 만약의 경우지만 사고라도 발생했다면 《한국미술오천년전》은 수장될 위험을 안고 있었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당시 《한국미술오천년전》은 한국예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고 세계유수의 박물관에 한국 미술품 상설전시를 앞당기게 된 한 요인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로부터 10 여년 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Art of Korea》전이 98년 6월 열리게 되었다. 당시 8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이곳에 뉴요커들은 아침 일찍부터 넥타이와 곱게 차려입은 정장을 하고 박물관에 입장을 했는데 한국문화에 대한 그야말로 지극한 관심을 보였던 것을 목도한 바 있다. 그들의 눈에는 세계 최고의 한국 문화재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과 다른 한국의 unique한 문화를 보기 위해서 그곳을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고려청자와 백자의 제작에 대해 묻기도 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게 된 적도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 박물관은 삼성문화재단의 기금으로 한국관을 상설운영하게 되었다.


이들의 관심과 노력처럼 진정하게 한국미술의 세계 속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서양미술과 우리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알지 못한다면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는 격과 다를 바 없다.

E.H 곰브리지의 서양미술사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고대 이집트 룩소르의 회화가 미케네와 그리스 “아르카익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아르카익 문화의 특징인 Archaic Smile은 “백제의 고졸한 미소”로 원용되고 있는 것에서 문화의 생명력을 알 수 있다.

동양의 건축 회화와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도 고대에는 신을 위한 건축과 공예로 발전했고 중세에는 예배를 보기 위한 건축으로 변화했으며 이는 후기에 이르러 다양한 원근법을 이용한 교회와 성당건축과 회화에서 본보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근세에 이르러 궁성과 저택의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은 임진란 이후 조선의 도공으로 백자를 만들고 그들의 "우끼요에"의 화려함과 결합시켜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조선도자에서는 상상도 못할 화려한 도자로 변화를 모색하였다.

일본의 모모야마 이전 시대에 最高價를 형성한 조선의 도자는 18C에 이르면 일본에서는 물론 터키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조차 자체생산이 가능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른 조선의 도자기는 그 명성을 잃고 만다. 수요가 늘면 생산도 많아지고 제품의 질이 올라가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대항해시대는 이러한 변화를 앞당기게 되었던 것이다.


여러 해 전에 독일의 구텐베르그 시티에 간 적이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상정고금예문으로 전해지는 데 이는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보다 200여년 앞서는 기록이라 한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본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보다 60년 빠른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인데 활자 상으로는 조악한 편이다. 칼라와 삽도가 있는 구텐베르그 성경을 보는 순간 世界最古라는 자신감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과연 우리문화의 세계속의 위치는 어떠한가. 그것은 동북아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 봐야 한다. “최고” “최대” “최초” “위대함” “가장”이란 단어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진중하게 역사 문화의 변화 속에 있는 예술의 흐름을 간파해야 한다.


몇 해 전 한국에 살던 외국인이 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권력자를 위한 것 외에 어떤 유물이 있을까요. 순간 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한 외국인에게 감동을 줄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우리에게 미술이 최대 최고 최초만이 아닌 미술을 통한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상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을 반추하여 내일의 문화에 반영할 수 있다면 이로써 미술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고대의 것만이 아닌 현대미술에도 적용이 됨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보는 세계문화! , 세계문화 속의 한국!

그것은 우리 문화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수요) 변화(문화의 질) 역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여 斯文亂賊으로 몰아세우던 잘못을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천년 뒤 세계속의 우리문화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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