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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2-06 11:11:28, Hit : 6511, Vote :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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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글]KBS 일요스페셜 "황남대총의 비밀을 보고



***KBS 일요스페셜 "황남대총의 비밀을 보고"***

얼마전 KBS에서 방영한 "황남대총의 비밀"은 KBS가 문화유산의 해
를 맞아 기획한 10대 문화유산 프로그램의 하나로서 특수영상효과와
더불어 그래픽을사용하여 당시의 실감난 재현을 했다기에 기대가
컸었다.그러나 방영일이 마침 서경답사가 있는 날이라 그만 집에
도착하니 마지막결론 부분만을 보는 아쉬움을 남겼다.
어제 무지개님을 통해 필림의 내용을보고 그 내용의 비약에 대해 약간
설명을 붙이고자 한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연대표를 보고 쓰는 글이 아니라 틀릴수도 있음)
몽골지방과 흑해 지방,등지에서 유목생활을 한 유목민인 스키타이인의
묘제인 적석목곽분이 2C후면 사라진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혹 경주의
대릉원에 있는 적석목곽분과의 어떤 개연성을 도출해 나가는 방식이다.
1973년에 황남대총을 발굴했는데 무덤의 내부형태는 적석목곽분인데 이는
목곽을 짠후,그 속에 목관이나 부장품을 넣은후 목곽의 상부에 돌을 넣어
봉토를 씌우는 구조인데 경주시의 대릉원에 주로 밀집되어 나타난다.
대릉원의 무덤의 주인은 미추왕에서 지증왕이라 볼수 있는데 이 황남대총
의 주인은 김씨의 세력을 확보한 내물왕으로 비정한다 .
내물왕 역시 갑자기 남하한 북방계라고 유도를 해 나간다.
따라서 이 적석목곽분의 주인은 신라의 토착세력이 아니라 훈족계통의 스
키타이인의 남하로 인해 동일한 묘제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결론이다.

물론 방송에서 문제의 제기와 유도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싶다.
상당 부분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그러나 성급한 결론을
도출하여 시청자에게 우리의 문화를 자칫 북방계 훈족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라고섯부른 판단을 하게 한것은 KBS의 공영성내지는 객관적 사고의
결여라고 말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사실 황남대총은 고문에서 무덤이라기 보다는 造山이라고 할 정도로 어마
어마한 규모였다.높이 22.5,길이는 120M에 가까운 이 무덤은 무덤이라기
보다는 산이 오히려 적당한 표현이다...표형분(표주박 형태)의 남분과
북분으로 결합되어 피장자들은 부부인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적석목곽분은 가족묘가 불가능하므로 이런식의 봉분의 결합이 특이한 점
이다.

규모에 있어 특이한 형태에 있어 이 무덤에  대해 거는 기대가 컷었다.
실로 많은 금제 수공품이 쏟아져 나왔다.,역시 적석목곽분으로 스키타이인
들의 유물과 비슷한 유물도 많이 나왔다.특히나 비슷한 성격의 유물은
왕관이다.사슴뿔과도 같으며 곡옥과 잎새등의 모습은 방영된 스키타이인들
의 샤먼이 사용하는 모자와 거의 흡사하였다.
그러나 타출기법으로 된 그릇이나 상감팔찌,유리제등의 비교는 억지춘향식
이었다.

타출기법은 고대그리스나 로만계통에는 흔히 볼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만계통은 스키타이인들의 문화를 본받아 그러한
그릇을 사용한 북방계라고 할수 있는가.또한 2C의 순금으로된 상감팔찌는
흔히 사용하는 형식과 별로 다를바 없었다.(물론 화면상이라 정확히 보기
는 어려웠지만...)또한 황남대총의 유리제품과 스키타이인의 토기와의
유사성은 우스개꺼리 밖에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단순비교에 불과했다.
그 유리제품은 분명히 로만계통으로 교역을 통해 여러 경로로 유입된것
이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 있다고 하여 한 민족이 통채로 유리제품을 가져와
사용후 무덤에 부장했다는 것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다호리를 비롯한 초기 무덤에 유리제가 발굴되었다.
그러나 로만 유리제는 제조기법이 상이하여 만들기가 쉽지 않으며 ,그
같은 유리제 제품을 왜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하는 것이다...우리
의 청동제나 금제처럼...

스키타이인들은 황금을 좋아했다한다.그들의 장신구를 비교를 해보이는데
내 눈에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오히려 각배와 칼이다...
우리의 청동 세형동검은 다소 로마의 검사들이 사용하는 칼과 모양이 비슷
하다.그럼 로마인들에게서 그 아이디어를 얻은것일까.
각배(뿔모양의 잔)의 모양은 정말 흡사하였다.,이러한 각배는 고대 로마나
그리스뿐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의기로서도 사용하였고 로마의 북부에 위치
한 에트루리아에서는 일반화된 잔으로서 농경생활을 하는 민족은 그 모티브
를 농경에서 받는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 된 이야기가 아날지...

자 사회자의 마지막 논평을 들어보자.
이러한 적석목곽분은 법흥왕때 부터 산으로 올라 (횡혈식 석실분)초원의
기상은 잊혀져 왔다.신라인들은 말에서 내렸다.말은 초원과 내륙을 연결하는
도구였다.그래서 신라인들의 무덤에서 말에 관한 유물이나 천마와 같은 벽화
가 발견되었다.신라 황남대총은 초원의 기억을 들려준다.
한때 광활한 대륙을 달린 유라시아의 기마민족은 새로운 중화의 질서에 편입
되어 기마민족의 야성을 잊어버린 것이다.

상기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
당시에는 고구려의 정복사업이 한창이었다.또한 공손씨와의 대대적인 전쟁
으로 요동지방은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고 3C말에는 위의 관구검
과의 싸움이 있었다.
백제는 3C에는 대방과의 싸움에 있었고 4C에 들어와 근구수와 근초고왕의
정복사업으로 이제는 한반도에는 발디딜 틈이 없이 고대국가가 형성이
되었다.

그러면 신라에 자리잡은 유목민은 알타이산맥의 서쪽에서 알타이를 넘어
초원의 길을 따라 수많은 나라를 지나고 고비사막을 넘어 북중국의 수많은
민족과 중국의 강성한 국가와 싸운뒤,부여와 고구려를 무찌르고 경주까지
어떻게 무사히 안착하게 되었을까.그리고는 어떤 방식으로 무혈혁명에 성공
하여 왕권을 장악하게 되었을까.

신라의 삼국통일의 원동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정복이 아니라 토착세력
이라는데에 그 이유를 든다.이러한 상식을 뛰어 넘어 삼국사기를 다시쓴
일요스페셜 노고에 대한 경의를 보내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고 싶다.

방송이 가져오는 미디어의 힘은 국민들에게 잘못된 사고와 역사관을 심어
줄수 있다. 이미 주변의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결론에 동감을 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신중해야 하며 반대의 의견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문제의 제기는 실험적 정신의 발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결론유도에 따른 방송사의 반성이 있어야 할것이다.

섯부른 결론은 영국에 있는 고인돌 형식의 스톤헨지라는 돌들을 한민족이
BC5000년전에 세우고 영국의 고대 왕권을 이끌었다는 결론과 다를바 무엇
이 있는가.단지 묘제의 형식과 일부 유물의 유사성으로만 결론을 내린다면
말이다...
초원의 길은 오랜 기간 유목민들의 생활...살기 위한 생활이 그 주가되어
왔다.기근과의 싸움...자연 재해로 인한 이동...오랜 시간속에 형성된
그들의 삶이다.나는 북방 스키타이 문화전이 작년 서울에서 개최되었을때
문화의 유사성보다는오히려 다른 점을 더 많이 발견했다.
적석목곽분이 왜 그들과 유사한것일까...결론을 내리기에는 쉽지않다.
그렇다면 김씨계 왕족이 북방계라는 주장보다는 보다 조심스런 새로운
묘제의 도입쪽이 안전한 방법일수 있다...

970416 아사달..차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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