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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재 미술에세이]日本의 '大和文華館'을 찾아서
박물관 및 전시물 소개
소개
번호:147/148  등록자:YC77  등록일시:95/12/02 23:38  길이:174줄
제 목 : 일본 나라시의 [대화문화관]을 찾아서; 이양재의 미술에세이.


                日本의 '大和文華館'을 찾아서

       1
  1995년 6월 18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경  일본 나라(奈良)시의 학원전역(學園前驛)에서 내려서니 역
시 여기도 비가 내린다. 우산을  바쳐 들고 역에서 나와 길을 걸으니, 대화문화
관으로 이르는 표지는 곳곳에 잘 되어 있다.
  역으로 부터 오른편 아랫길로 뻗은  좁은 도로를 따라 쭉 내려 가면, 작은 삼
거리가 나온다.  그 모퉁이를 마악 돌아서니  저 만큼에서 대화문화관(大和文華
館) 주차장 표지와 몇군데 골동점이 보인다.
  "이 가게들은 대화문화관을 찾는 손님들을 주 표적으로 한 골동점임이 틀림없
을 테지"하는 생각이 든다.
  낮으막한 구릉을 향하여 난 길을 따라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백합을 바라보며
타박 타박 걸어 올라 가면 구릉위에 자리잡은 대화문화관의 전시관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뭐가 이래"하는  탄식이 나온다. 기대와는 딴 판으로 대화문화
관이 콩크리트 건물인 이유에서 인지 저으기 실망스럽다.
  하지만 "아니 이럴수가?" 건물로 인한 잠시의 실망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순간
이다.

  전시된 도자기 가운데는 국내에 전혀 없는 일품이 여러점 눈에 띄었고, 3점의
고려 불화를 위시하여 이장손(李長孫) 서문보(徐文寶) 최숙창(崔叔昌)등이 그린
15세기 후반의 <산수화>  6점과 안견(安堅)의 전칭 산수화 <연사모종도> 등등은
필자를 여러 시간 이곳에 잡아 두었다.
  더군다나 그간 도록을 통하여 보아왔던 작품에 대한 느낌과 실물을 보면서 느
낄수 있는 느낌은 너무나도 달랐다.
  "사진 미인과 실물 미인이 따로 있다더니------"

       2
  꼭 한달전인 지난 5월 18일부터 대화문화관에서는 <조선의 미술> 특별전이 열
리고 있다. 회화와 서적 20종,  자기 46종, 칠기 9종 등 모두 91종의 우리 문화
재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작품들이 오늘  여기에 있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착찹한데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작품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제 대우를 받고 있
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슬그머니 분통이 터진다.
  "만약에 여기에 소장되어 있는 이장손 서문보 최숙창이 그린 산수화가 서울에
있었다면 제 대우를 받고 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의외로 필자의 양심에서 나오는 소리는 분명하게도 "아니다" 였다.
  그것은 대화문화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장손 서문보 최숙창의 <산수화>는 작가
자신이 직접 관지(款識; 이름을 쓰거나 낙관을 찍은 것)를 적어 넣은 작품이 아
니었고, 세명의 화가명(畵家名)이 똑  같은 서체로 적혀져 있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에 의하여 화가명이 적혀 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작가의 이름을 적어  넣은 사람은 전혀 의외의 인물일 수도 있다
는 관점을 갖게 한다.
  그것은 관지(款識)가 분명하게 되어  있는 어느 화가의 국내 전존 작품을 "외
국의 어느 학자가 부정하였다" 또는 "그 시대의 작품이 아니다" 라는 등등의 막
연하기 까지 한 여러  구실을 내세워 부정하는 습성이 우리 미술사학계 일각(一
角)에 만연되어 있기에 이들 작품들이 국내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진작(眞作; 진
품)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15세기 후반기에 그려진 기명작품(記名作品;
작가의 이름이나 낙관이 되어 있는  작품)이 별로 없고, 또한 이 작품들을 제외
하고는 이들이 그린 다른 전존(傳存) 작품이 전혀 없는 실정인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 관점으로 보기 일쑤인 우리 회
화사학계의 어느 대가(大家)께서도 이 작품들을 이들의 작품으로 일찌기 인정하
고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것이 아닌가 생각케 한다.
  그래서 필자는 더욱 더 서글프기 까지 한 것이다.

       3
  "이장손은 누구고, 서문보 최숙창은 또 누구야?"
  "몰라, 난 아직 만난 적 없어?"
  아마도 대화문화관에 소장된 이들  작품이 없었다면 이 화가들의 이름은 우리
회화사학자들 가운데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만큼 잊
혀진 조선초기(朝鮮初期)의 화가들인 것이다.
  다만 이들  가운데 이장손만은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용齋叢話)>에 그림을
그리는 유명한 화가로 이름이 언급된 바 있다.
  그런데, 10여년전 인가로 여겨지는  여러해 전에 누군가가 내게 한 책을 가지
고 왔다.  그 책은  성종5년(1474)에 발행된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
法)>의 초쇄본 하권(下卷)  5권1책(영본)이었는데, 그 책의 끝에는 김수온(金守
溫)의 발문(跋文; 책  끝에 부치는 글)과 함께  조성기(造成記; 책을 만들며 책
끝에 부치는 책을 만드는데 간여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가 밝혀져 있었다.
  "어!  화원   백종린(白終麟)과  이장손(李長孫)이라------,  그리고  각수는
------!, 변상도(變象圖; 불경의 앞에 부치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한 그림)를 그
린 화가와 판을 판각(板刻; 판을 새기는 것)한 각수(刻手)가 밝혀져 있네. 매우
이례적인 책인데------,"
  이것을 보면 어쨌든  이들은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사람인 것 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 화원은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다만 판화의 원
화를 그린 화가라는 기억 정도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수년전 우리나라의  조선초기 회화사를 살펴 보면서 이들에 대한
기억이 마음속 깊이 새롭게 새겨진 것이고, 마침 일본 여행중에 <대화문화관>에
서 "조선의 미술" 기획전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를 찾은 것이다.
  이들의 작품 6점 가운데 각기 1점씩에는 이장손 서문보 최숙창의 이름이 적혀
져 있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6점의 작품이 모두  비슷한 화풍으로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비교하여 보면 약간의 차이점이 나타난다. 틀림없이 3인의 작품이 2점씩
분류되어 있었던 것인데, 새로  표구하는 과정에서 떼어져 3작품이 섞여 졌으므
로 3작품은 작가 미상으로 되어 버린 것 같다.
  미술품은 원상태의 유지가 꼭 필요하다. 약간의 변경이 있음으로 해서 상대적
으로 그 가치의  규명이 어려워 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
다.

       4
  대화문화관에 전시된 다른 작품들과의 무언(無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희끄스름한 사진으로 만 볼 땐, 널 못생긴 여인(?)인 줄 알았더니 이제 밝은
날 자세히 살펴 보니 상당히  미인이 구만."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져 오고
있는 <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 앞에서 필자가 중얼거리는 말이다. 바탕은 늙었
지만(낡았지만) 상당한 미인이다.
  그리고 한 20여분간 낙관 부분만을 눈이 아물거리도록 들여다 보았다.
  "도대체 무어라 찍혀  있는 것이지?  안견(安堅)은 아니고, 안득수(安得守)도
아니고 안가도(安可度)도  아닌데------? 소장인(所藏印)인가? 후낙(後落; 나중
에 낙관을 넣는 일)은 후낙인데------,"
  눈이 피로하기에 눈을 쉬기 위하여 다른 작품들을 둘러 보고 다시와서 들여다
본다. 하도 뚫어져라 하고 보며 여기 저길 헤메 다니며 보니까 박물관 경비들의
감시가 심하다. 나는 작품을 보고 그들은 나를 보고------,
  "외국에 까지와 돈을 내가면서  우리의 것을 본다---? 이렇게 공개를 하는 것
만 해도 고맙지하며------,"
  갑자기 내 어깨가 위축되며,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 졌다. 식민지시대에 수
탈된 것인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간 것인가? 어느 경우이든 어느 한 시
대에 우리 민족이 깨이지 못하여 이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눈물겹다.

       5
  <연사모종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사람들을 보면 매우  비슷 비슷하게 생겼어도 두상이나
생김새가 구분이 간다. 역시  이 세나라의 고화(古畵)도 매우 흡사한 점이 있기
는 하나 국적이 확연히 구분이 간다.
  "틀림없는 우리의 그림인데------, 그것도 15세기 말이나 아무리 늦어도 16세
기 전반기 이전의 작품으로 보이는데------!"
  "언제부터 무슨이유로 안견의 작품이라고 전해져 내려 왔을까?"
  "실제로는 누구의 작품일까?"
  "대화문화관에 소장된 연유는 어떻고, 예전의 소장자는 누구일까?"
  원래 <연사모종도>는 <소상팔경도> 중  한 폭이다. 따라서 "여덟 남매 가운데
홀로 남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험한 세상(역사)을 살
다가 고향에서 멀고 먼 타국땅 일본으로 흘러 와서 간신히 살아 남은 것이다.
  다시금 낙관 부분을 뚫어져라 하고 내려다 본다. 하지만 도무지 알수가 없다.
이럴때는 낙관의 모습을  종이에 그려 보는 것이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려 본다.
  그래도 읽을 수가 없다. 답답하다.
  그림에게 묻고 싶다.
  "야! 너 도대체  무어라 찍혀 있는 거니? 너를  보러 먼길을 왔잖니, 제발 좀
말해라"하고------,
  그러나, 이 작품은 더 이상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더욱 만감이
교차한다.

       6
  어느 일본인 두사람이  언제부터 인가 내 옆에  서서 저희들 말로 수근거리며
이 <연사모종도>를 깊이 관찰한다.  한 사람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보
이는 아마도 박물관 직원인 것 같다. 또 한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저들은 왜 이 그림에 그렇게도 관심이 많은가?"
  "혹 지난해에 시도되었던  <안견논쟁>에 이 그림이 거명되었던 사실을 알고서
관심을 깊이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난해에 안견논쟁을 주도 한 내가 보기에 이 그림은 안견의 작품으로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안견의 다른 <소상팔경도>나 <사시팔경도>와는 필법과 화
격면에서 큰 차이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견과 이징(李澄)을 잇는 중간 단계의 어느 화가 작품일 가능성이 크
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일까?"
  "단서가 없다." 원래 이 <소상팔경도>의 마지막 폭에는 작가에 대한 기명이나
관지(낙관)가 있었을  수가 있다. 그러나 형제와  자매를 잃은 외톨박이를 찾아
규명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안견이 즐겨 사용한  화풍의 영향이 화면의 곳곳에서 보이므로 그저 "전
안견(傳安堅)", 즉 "안견의 작품으로 전한다"고 하는 것이다.
  밖에는 오던 비가 멈추었다. 대화문화관 전시실의 창밖으로 머얼리 호수가 보
인다. 잠시 눈을 다시 식힌다.

       7
  볼 것이 많다. 지금 자세히 못 보면 언제 또 볼 것인가? 차츰 오후가 깊어 간
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간다. 오늘 중으로 나고야를 거쳐 동
경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남은 미련이 있어,  현관으로 나가다가 전시관 내의 매점으로 돌아 섯
다.
  "얼마에요?"
  인간의 기억은 유한한 것이고,  언젠가 미래에 글을 쓰려면 자료를 챙겨야 한
다. 따라서 수년전에  발행되었던 대화문화관의 도록(圖錄)을 4종(種)이나 골라
낸다.
  "후------, 일본은 물가가 비싸! 가뜩이나 없는 경비에 주머니만 가벼워 지니
------,"하는 푸념과 함께------,
  의외로 여러권의 책을 삿던 모양인지 나를 다시 쳐다 보는 사람이 있다. 아까
<연사모종도> 앞에서 수군거리던 박물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내가 인사를 하게  되면 시간이 지체 된다.  차라리 그냥 돌아서서 가는 편이
좋다고 여겨 진다.
  대화문화관과의 첫 인연은 이렇게  끝나 가는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 걸
음을 돌려 나왔다.
  마침, 밝은 햇살이  구름사이로 삐져 나와 나의  발길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내리막길 좌우의 꽃이 비를 맞아서 인지 더욱 더 곱다.  (1995.8.16.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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