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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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고려 국보전
박물관 및 전시물 소개
소개
대 고려 국보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층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그러
나 마음 한 구석에 걱정도 있었으니 고려 탱화나 고려 자개가 국내에는 몇
점이 없으므로 소문난 잔치로만 끝날 것이 아닌지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많은 기획 전시물을 보아 온
터이지만 이정도 규모의,내용의 전시장이면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전시회임에 틀림이 없다.

이 전시회를 통해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얘기해 오던 고려시대 문화의 찬연
함에 다시한번 눈을 돌리게 된다.
고려 때의 공예품의 화려함과 탱화의 걸작품,고려청자,그리고 고려 때 건축을
엿 볼수 있는 금동대탑등이다.
이 중에는 일본 중요문화재 10점,대영박물관을 비롯한 미국등지에서 26점등
은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또한 전세계에 20여점 밖에 없다는 나전칠기가 8
점이 전시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총 266점 과연 국보급의 성대한 전시회
인 것은 입구를 들어서자 보이는 10여점의 고려탱화를 보면 알 수 있다.

2층 VIDEO실에서 나오는 영상의 첫마디는 "찬란했던 문화였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문화였다 옛고려인들은 수도자의 예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
작했고 하루일을 마감했다.불교는그들의 생활이요,곧 종교였었다."
그리고 고요한 가운데 법고와 범종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새로움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망각을 깨뜨리는 종교적인 소리
였었다.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연결고리를 말함이다.

이 글은 고려국보전을 보고 잊어서는 안될 부분을 기억하기 위해 적는 일에
불과하지만 지식의 박약함으로 천박한 글이 됨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고려탱화가 보였다.설명문을 읽고 뒤를 보니 수월관음도가
있었다.몇해전 돈황벽화전에 갔을 때 양류 관음도가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관음보살은 독존화도 있지만 주로 아미타의 협시보살로 표현되는데 고려 때
는 이 같은 관음보살만을 표현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양류관음은 버들가지를  한손에 든 모습의 관음상이고 수월관음도는 연못가
에 대나무가 양쪽에(쌍죽)있고 그 앞에 감로수가 있으며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있게 마련이다.
관음은 여러 형태로 나타남에 이 수월관음도 역시 입법계품에 따라 묘사된
것이다.

먼저 성중내영사 소장의 수월관음을 보았다.우측을 바라보고 있으며 우측하
단에 선재동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끓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투명한 紗羅를
입고 있으며 그 앞에는 관음을 상징하는 정병이 있고 반가좌를 한 채 앉아
있다.
맞은 편의 대화문화관 소장의 수월관음도가 있다.성중내영사 것보다는 크기
에 있어서나 모양에 있어 빈약함을 보이지만 가슴쪽의 6각의 장신구나 목
주변을 감은 붉은 줄의 의미는 잘 모르나 색상이 선명하다.
수월관음은 역시 경신사 소장의 수월관음도가 크기에 있어서나 수법에 있어
백미이다.경신사 소장의 수월관음은 크기가 4M를 넘는다고 한다.전시회장의
후미에 있어 길이를 잴 수는없지만 대충 눈짐작으로도 4M는 족히 넘을듯하다.

이것은 다른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좌측으로 앉아 있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반가좌를 한 상태에 주위에는 온갖 기화요초가 있으며 백의관음에 버금가는
얇은 사라를 입고 있다.한쪽 발을 연꽃위에 올린 모습은 청정함의 극치를
보는듯하다.양쪽에는 대나무가 희미하게 보인다.아래에 있는 선재동자의 모
습이 다소 나이가 들은듯 보이지만 합장을 한 거룩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화엄정토 변상도의 불보살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눈빛은 제각기 달라 보였다.
위에서 부터 보살,비구,불타의 순으로 되어 있으며 불보살의 머리에는 두광이
있으며 비구에는 보개가 우산처럼 펼쳐져 있다.

미륵하생변상도는 그 색채의 중후함과 섬세함이 선경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미륵불의 하생에 농사짓는이의 모습에는 기쁨이 넘치는 듯하다.삼각구도의
형태로 가운데 미륵불이 있고 범천과 제석천을 비롯한 용화세계의 모습을
묘사한다.

아미타삼존도 앞에 섰다.아미타불의 미려한 옷차림에 눈길이 간다.아미타불의
미간에 광명이 비치고 극락세계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관음보살이 머리를 숙
여 맞이한다.우측에 서 있는 지장보살은 근엄한 자세로 서 있다.
허리를 숙인 관음보살은 아미타의 화불과 연꽃을 두손으로 받힌 전형적인
관음보살이다.

시왕도는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라고하며 열폭 가운데 2폭을 전시중이다.

이들 탱화는 소위 불단의 뒤를 장식하는 후불탱화가 많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독존화도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이는 당시 고려사회의 귀족들이 재력과
버금가는 불심으로 이같은 탱화의 후원자 역할을 할 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곱가지의 색깔이 쪽빛에서 나온다하고 뒤에서 색을 넣는 배채법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던것이다.또한 화공들이 탱화를 그릴때 금욕과 함께 심신을
가다듬은 후 성심을 다해 그릴 수 있었기에 불후의 명품이 탄생한 것은 우리에게
그 의미를 되살려준다.
특히 곡선의 아름다움이 체계적이고 마치 컴퓨터로 도안한 정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에 100여점 있으며 국내에는 10여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소장품도 근래에 구입한 것이라고 하는데 소중한 우리문화유산을 제대
로 보존해 전달해야 할 의무감을 무겁게 느낀다.

철제 비로자나여래 좌상이 있다.이것은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상으
로 10~11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통일 신라의 수법이 전체적으로 느껴지
며 불두의 형태에서 육계의 작아짐이라든지 겹쳐진 우견편단의 모습이 그러
하다.팔옆에는 주조한 흔적이 뚜렷이 보이며 귓불은 약간 떨어져 나간듯하
다.옆에 철제 불두가 보이는데 당시 고려인의 얼굴을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건너편에 사경변상도가 있다.금을 이용해 닥종이에 물을 들인 감지에 변상도를
그리고 경문을 적어 놓은것이다.금과 은을 이용해 글과 그림을 적는다는 것
은 엄청난 재력을 요하는 것이다.변상도의 그림을 보면 고려탱화와 똑 같은
방법으로 구도와 형태를 구성한다.고려 동경의 모습에도 그러하니 당시에
유행하는 그림의 형태와 구도가 그만큼 축적되어 있었다는 것을 엿 볼수 있다.

불상에는 여러 종류의 재료가 있다.금동불이 있고 어느 무덤에서 출토된
상아로 만든 4~5센티 정도의 작은 것도 있으며 소조불도 여러 형태가 있다.
상아로 된 이불상은 시무외,여원인을 한 수인이며 작은 크기에도 손가락,옷
섶,양족이 범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에는 상아로된 불상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고려시대는 불상의 모습은 다소 쇠퇴했으며 대신 불화나 부도,도자기,금속
공예등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다.어떤 시대에도 주도적으로 뭔가를 만든
시대가 있었으니 당시에는 불교의 심취로 당연히 불교의 의식과 관계되는 것
이 많이 만들어 졌고 귀족문화로 인해 도자기 나전칠기류가 만들어짐은 당연한
일이며 그 결과 경험과 기술의 축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금동으로된 護持用 불감이 있다.그 속에 후불벽화가 있는데 이는 당시후불벽화의
배치도를 알 수 있게 한다고 한다.지붕은 우진각의 형태이다.
석가세존의 양옆에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있으며
인왕상이 있다.

다음으로는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다.말로만 듣던 고려시대 나전칠기를 본다
는 생각에 주의깊게 살펴보았다.나전칠기를 비롯한 유물을 보호한 보호각은
독일에서 만든 특수장치인데 습도,온도등이 유물의 종류에 따라 조절되어
진다고하며 약 10억원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간접적으로 여기 진열된 유물의 수준을 짐작케 해준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자개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내문을 인용하면 宋사
신 서긍이 고려도경이라는 책에서 극히 정교하고 세밀하니 과히 귀하다고
할 만하다라고 극찬을 했다한다.
특징은 전복의 껍질을 사용한 나전절문이고 둘째는 은동의 금속선이며,셋째
는 거북의 등껍질이라고 하는 대모의 투광성을 이용하여 노란색과 붉은 색
을 낸다는 것이다.

문양은 주로 국화문과 꽃중의 꽃이라는 모란문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끊김이
없이 잎새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필요한 부분에는 당초문을 쓰기도 했고 기
하학적인 무늬도 있다.

중앙에 자그마하면서도 꽉찬 느낌의 盒이 있는데 이는 나전대모 菊唐草문
염주합이라는 것이다.여기에서 호박으로 만든 염주가 나왔으므로 염주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붉은국화문 주위에 꽃잎을 돌림으로 회전의 느낌을 주며 국화의
주위에 당초를 적절히 배치하여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나게 한다.가운데는 범자인
[옴] 자가 기하학적인 도상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범인의 눈에도 고려장인의 정교한 제작기술과 빼어난 예술감각을 보
여주는 명품으로 생각된다.
그외 나전국화당초經盒이 있고 나전 국화당초무늬상자가 있었다.13세기 이
후의 고려 나전칠기는 꽃의 크기가 커졌고 흑칠의 범위가 넓어졌다.고려에
서 조선의 과감한 통영칠기로 넘어가는 과정이 보인다.

다음  단계는 동양미의 극치라 하는 고려청자의 차례이다.
소위 고려인은 중국의 秘색과는 달리 翡색이라 불렀다한다.고려인들은 자연을
그대로 방안에 가져오려 했음을  이 청자에서 확연히 볼 수 있다.

선의 미로 곧 잘 표현되어온 우리 문화의 특성에서  청자의 유려한 자태는
과히 대명사격이라 불리어 질 수있다.탱화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선의 아름다
움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톡특한 곡선의 표현은 말할 수 없는 환성을 불
러 일으키게 한다.

먼저 청자素문 과형병을 보면 구연부는 나팔꽃의 형태이면서도 그 몸체는
참외형으로 균형미에 있어 산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교의식에서 주로 쓰이는 정병은 긴 목에 두툼한 몸체로 해오라기의 몸짓
을 하고 있으며 단아한 모습이 겸손해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청자 포류수금문 장식판이다.이는 요즘으로 말하자
면 벽에 붙이는 타일을 말함인데 벽면을 청자로 장식을 하자면 상상이상의
재력을 필요로 하고 그 부대시설도 만만치 않았음에 사치의 정도가 짐작이
간다.또한 청자 당초문을 새긴 숫막새도 함께 있어 고려사에 양이정이라는
정자의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기록이 있어 12C중반 문화의 수준에 가히
경외감마저 들었다.
포류수금 장식판은 여러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그려진 그림의 일종인데 浦란
물가를 말함이고 柳는 버들가지이며 水禽이란 물에 사는 짐승 오리등을 말
함이다.해오라기인지 오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물가에 한가로이 노니
는 모습은 당시 권문세가나 실력자들의 모습 보다는 서민들의 안락함을 추
구하는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또한 청자 비룡형의 창의성이나 대접에 상감을 한 국화문의 깜직함은 놀라
움을 자아내게 한다.
청자 진사채 당초문완이 진열실 중앙에서 많은 눈길을 받으며 있었다.자그
마하면서 오히려 소박한 것의 모습을 가진 접시는소위 진사로 상감한 것이
다.진사는 酸化銅을 말함인데 초벌구이를 한다음 진사를 발라 청자투명유를
시유한 후 다시 재벌을 하는 것을 말한다.진사는 얻기가 힘든 만큼 진사청
자도 드물다.
강화도의 최항묘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청자진사채 연판문瓢形주전자는
과히 천하제일의 작품이 아닐는지.청자빛과 진사의 어우러짐이 마치 물속
에서 피어난 수련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활짝핀 만개한 꽃을 보는
듯하다.
그외 청자벼루,도장,청자양각 대나무문병등은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자연에
서 구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자연과 인공과의 절묘한 조화 바로 그것이
고려청자를 만든 도공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상향은 청자상감 국화모란문매병에서 날아가는 학의 모습에서 구할수
있지 않을까.모란,학,국화의 모습에서 끝없이 추구되는 그들의 이상을.

고려를 말하고자 함에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무늬 정병을 빠뜨릴 수 없다.앞
서 말한 흐르는 물가에 오리가 있는 모습은 당시의 유행한 시대적 모티브였
다.청자의 유연함을 살리면서도 청동의 재료적 특성에서 오는 차이를 극복
하는 은입사기법을 이용하여 은실을 청동에 박는 일종의 상감기법이 양감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격조가 뛰어난 걸작이다.

이 이외에도 용봉문향완,동제은입사 雲龍당초문반등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역시 금속공예에서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하는 것은 은제도금 打出화조문 표
형병이다.이는 예술의 극치라고 밖에 말할수 없지 않을까.범인의 눈에는 만
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작품설명을 담당하는 사람 역시
안에서 두드려 그렇게 정교한 표주박형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일이라고
의아해 한다.
정교함이 덜한것도 아니고  한군데도 흐튼데가 없이 꽉차있는 모습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팜플렛의 표지그림으로 나오는 용두보당이 보인다.어디 작품중 우수하지
않은것이 없지만 이것 역시 정교함에 있어 뛰어난 작품이다.용의 모습은
구부러진 수염과 머리의 뿔,여의주등의 사실적인 묘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고려시대의 건축의 양식을 간접적으로 나마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는 금
동대탑이 있다.높이가 1.5미터 정도되는 2중기단 위에 탑신이 5츰인 금동탑
이다.2츰부터 풍경이 달려 있고 계단은 1층기단부부터 1층탑신 까지 뻗어
있다.탑신부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고 문창살도 보인다.난간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고 문은 입구에만 나와 있다.각층의 체감율도 적절하지만 2층 옥
신에는 16불을 새기고 3층은 12불,4층은 12불,5층에는 8불을 새겨 약간씩
체감을 시켜 지붕의 길이와 불상의 크기가 어울리게 되어있다.
현재는 수덕사 대웅전,무량수전,봉정사 극락전,강릉 객사문등 불과 몇개
밖에 없는 고려 목조 건축을 이나마 금동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외 청동 다층소탑이 있고 고려의 청동범종도 신라종의 모습을 계승하여
용뉴와 음통이 달려 있고 유두,비천인상등은 형식화된 느낌은 들지만 청동
을 최고로 빗는 기술을 가진 고려인들은 늠름한 미소년과 같은 범종을 창안
해내었다.

이층으로 올라 갔다.계단을 올라서니 많은 사진이 즐비했다.주로 북한에 있
는 문화유산들이다.특히 많은 고려의 외성들이 보였다.천리장성의 모습,곰
민왕무덤등이다.처음으로 보이는 유물은 공민왕의 천산대렵도다.몽고식의
변발을 한 사나이의 모습은 뚜렷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해동의 2대 서성이라 불리는 탄연의 글씨가 있고 고연휘 작이라 보는 그림
이 한 폭 있다.관심있는 사람에게는 고려회화를 보게되는 행운을누리는
장소이다.그리고 공민왕이 그린 염제신의 초상은 사실적인 부분이 두드러진다.

그 안쪽을 도니 고려 여인네들이 쓰는 거울이 보이고 고려때 금속활자중 글자
1자가 새겨진 활자의 일부가 무덤에서 발견되어 보는이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이란 것이 비록 그 1 자가 명예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예사롭게 보아 넘겨지지않았다.

사람이 죽고나면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만 묘지명을 만들어 무덤내 보관하는
것이 있다.그곳에 최충헌의 묘지명에 이름,나이 관직,업적등이 적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동경국립 박물관 소장으로 되어 있다.무덤
내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일본의 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왠지 우리를 슬
프게 한다.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할것인지는 모
르고 지나가는 것이 더욱 슬프다.

이 많은 유물을 얘기 할려면 지면으로는 어림도 없을듯하다.그러나 고려때
의 화려한 문화 유산을 말로만 그치는 행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가슴에
새기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지금은 주초만 있는 만월대의 모습에 포류수금의 무늬를 놓는 것은 언제일
까.백자상감모란무늬 매병은 양옆이 들어간 형태인데 당대의 걸작이라 한다
.쑥 들어간 옆구리의 모습에서 고려국보전은 대중들로 부터 오히려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미완성의 완성이란 말처럼.

寺寺星張 塔塔雁行 .
고려는 이처럼 가는 곳마다 절이요 탑으로 줄지어 있었다.전 시대를 통해
그만한 외침을 당한적이 있었던가.그럼에도 이같은 大高麗國寶殿은 우리에
게 유물의 소중함과 문화의 지속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푸르른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에 이같은 전시회가 또 한번 열리는 풍성한 가
을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1995년 9월 15일 고려국보전이 끝난지 닷새째
       아사달 차문성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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