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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비와 생가
소재지 : 부여
전시물 : 시비, 생가
분 류 : 시비

중요도 : ★★★★ (1)

박물관 및 전시물 소개  |  댓글
소개
*신동엽 생가와 그의 시비

신동엽의 생가는 계백 장군 동상근처의 부여 동남리 294번지이다.그는 1930
년 그곳에서 태어 났으며 그의 나이 40이 되던해인 1969년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신동엽 생가는 비교적 관리가 잘되고 있다.부친 신연순옹이 집을
지켰으나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은 홍산중학교 임의수선생이 집을 관리한다고
한다. 큰 방에는 추모제때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시화들이 가득 걸려 있다.
그는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된 후
10년동안 그의 작품세계는 일관되게 한국의 문예부흥을 노래하였고 <금강>
이란 서사시에서 그의 작품은 민족의 혼을 끌어안는 강인한 힘을 보여 주었다.
신동엽은 그의 시세계에서 언제나 역사의식을 불어 넣고 있다.바로 그것이
신동엽을 부여의 시인,이미 사라져 간 백제의 시인이라 부르는 바다.
그의 대표적 서사시인 <금강>은 1894년 갑오년의 농민전쟁의 발생과정과 그
성쇠의 의미를 오늘의 관점에서 확인 해주는 작품이다.바로 미완의 혁명인
4.19를 동학 농민전쟁과 연결시켜 작품화 한것이다.
또한 1967년에 간행된 57인 시집에 실린 <껍데기는 가라>역시 순수한 마음
의 회복과 현실적으로 순박한 마음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힘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시이다.

신동엽의 시비는 백제교 옆에 호젓이 서 있다.시비 건립 당시에 탄압으로 인
해 그의 시비에는 그의 대표적 시인 <껍데기는 가라>와 같은 작품을 새기지
못하고 서정시에 가까운 <산에 언덕에>를 각인하게 하여 시인의 정신을
유약하게 만들기 까지 하였다.부소산에 시비건립을 에정하였으나 결국에는
백마강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오히려 그의 시 정신을 생각할 때 그곳이
그가 원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왜냐하면 그는 진정 부여를 사랑하고
사라진 아사달과 아사녀의 후예들이 이 땅에서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
기 때문이다.

\"그럼 안녕
언젠가 또 다시 만나지리라
논길
서해안으로 뻗은 저녁노을의 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
우리의 입김은

해후할지도 몰라.\"
★★★★ 소담님평 x 2004-09-22
.............
넹.........조아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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